[마켓인사이트 Analysis] [김지욱 칼럼] 연기금이 헤지펀드를 만났을때

입력 2014-05-02 18:32
이 기사는 04월17일(14:2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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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칼럼]한국자본시장에도 이제 연기금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속성상, 연기금은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대체투자시장이 같이 발달하지 않는다면, 장기속성의 연기금이 단기적 주식이나 채권투자만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

2000년 이전에만 해도, 우리나라의 연기금들도 자신들의 가용자금을 대부분 국공채 투자에만 집중하였고, 심지어 은행의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두는 형편이었다. “대체투자”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나라 연기금들에게 부상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이다.

최근에는 국민연금 등 일부 선도적 연기금들이 상당히 의미 있는 규모의 대체투자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간간이 보도가 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그들의 대체투자는 일반 채권/주식 투자규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적은 부분임은 물론이나, 초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는 한, 연기금들의 대체투자 비중은 점점 커져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선진 시장인 미국의 경우, 연기금들의 평균 대체투자 비중은 총운용자산의 30%대를 이미 오래 전에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투자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연기금들의 대체투자가 어떤 계기로 붐을 일으켰던 것일까?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데이빗 스웬슨(David Swensen)이란 사람을 알아야 한다. 스웬슨은 스칸디나비아 이민자의 후예로, 1953년에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에서 출생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루터파 교회의 성직자였고, 그는 이러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금욕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인 기독교 교육을 받으면서 컸다. 위스콘신대학 리버폴스 캠퍼스(University of Wisconsin at River Falls)에서 경제학을 전공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위스콘신주 출신 미국 연방상원의원이 되는 것이었으나, 1975년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입학하면서 장래 노벨 경제학상을 타게 되는 포트폴리오 이론의 대가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을 만나면서 완전히 인생항로가 달라졌다.

그는 토빈 교수의 지도로, “회사채의 가치평가 모델”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1980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월스트릿 투자은행인 살로몬브라더스 채권부서에 고용이 된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IBM과 세계은행(World Bank)간에 IBM으로 하여금 스위스프랑과 독일마르크화에 대한 노출을 헤지하게 만드는 역사상 최초의 통화스왑(Currency Swap)거래를 고안하여, 금융의 역사를 다시 쓰는데 기여한다. 2년후인 1982년에는, 경쟁사인 리먼브라더스가 그를 임원급으로 영입하여 그 회사 최초의 스왑데스크(Swap Desk)를 창설하고 운용하도록 하였다. 역사상 월스트릿에서 이 정도 짧은 기간에 이 정도 고위직으로 승진한 사람은 아마도 스웬슨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월스트릿에서 한참 잘 나가던 1985년, 막 서른 두살이 된 스웬슨은, 예일대학교의 그의 은사들의 꼬임에 빠져서, 예일대학교 재단의 자금을 운용하는 최고투자책임자, 즉 CIO로 영입되게 된다. 청교도적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의 잠재되어 있는 도덕의식이 여기서 슬그머니 발동된 것이었다고 뒷날 스웬슨은 술회한다. 연봉은 무려 80퍼센트가 삭감되었지만, 그는 예일대학교 재단사무실의 수천 권의 책들로 가득 찬 고색창연한 그의 새로운 사무실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 이 선택이 결코 잘 못된 선택이 아님을 깨달았다.

스웬슨이 CIO로 취임하던 1985년의 예일대학교 연기금(Yale Endowment)의 총 운용자금은 10억 달러 수준이었고, 그 대부분이 미국 주식, 미국 채권, 그리고 현금(은행의 정기예금 및 증권사의 MMF)에 투자되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대체투자는 전체 운용자금의 겨우 5%가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그 대체투자는 대부분이 어설픈 부동산 실물 투자였다. 당시엔 예일대학교 말고도 대부분의 대학의 연기금의 투자방식도 다 이와 유사하였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이론의 대가인 제임스 토빈의 수제자이자, 그 스스로 월스트릿에서 금융의 금맥을 찾던 스웬슨이 보기엔, 이는 한참 모자라는 방식의 자산분배였다. 스웬슨은 완전히 연기금 투자의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는 “예일 모델”이라는 투자 모델을 새롭게 선보인다. 이 예일 모델의 근본적인 토대는,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대한 장기투자”와 “수익이 난 곳에서 비중을 줄이고 다른 곳으로 옮겨타는 리밸런싱(Rebalancing)”등 두 가지로 집약 될 수 있겠다. 스웬슨이 보기엔,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에 대한 투자는 남들이 버는 이상의 돈을 벌 수가 없다. 예일 모델에 의하면, 다변화(Diversification)라는 명제는, 미국 주식과 미국 채권 분야 중 어느 개별 종목을 사고 어느 개별 종목을 팔 것인가에 있지 않다.

“실질적 다변화”는, 미국 주식과 미국 채권에 대한 자산배분을 대폭 줄이고, 그 여분을 외국 주식, 외국 채권, 사모펀드, 석유/가스/목재 등 원자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지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익을 일단 창출한 영역에서 일부 자금을 빼서 다시 다른 자산으로 갈아타는 리밸런싱 과정이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모든 투자영역들에 대한 분산투자와 리밸런싱 전략을 통해, 그는 절대수익률(Absolute Return)이라는 명제를 추구하였는데, 이 말은 요즘에는 헤지펀드의 동의어처럼 되어 있지만, 이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바로 스웬슨이었다. 연기금이 헤지펀드와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도적적 금욕주의자였던 스웬슨은,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도와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스웬슨은, 스스로가 경제학자였기에, 헤지펀드의 인센티브 구조를 지극히 선호했다. 그는 투자펀드가 규모가 커질수록 펀드매니저가 수익을 창출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웬슨은 특히 뮤추얼펀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펀드의 자산규모에 연동한 수수료율 체계를 극도로 혐오하였다. 대신, 헤지펀드들처럼, 매니저가 가져가는 수익의 대부분을 성공보수로 구성하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그리고, 펀드매니저가 투자가 성공하였을 때는 성공수수료를 두둑이 챙겨가지만, 투자가 실패하였을 때는 어떠한 페널티도 물지 않는 구조를 싫어하였기에, 예일대학교 연기금의 투자를 받기 원하는 모든 헤지펀드 매니저들에게, 그들의 개인재산을 펀드에 넣도록 요구하였고, 이를 수용하는 매니저들에게만 투자금을 분배하였다. 예일 모델을 시작한지 10년이 경과한 1995년이 되자, 예일대학교 연기금의 자산배분 중 헤지펀드에 대한 배분이 4분의 1에 달하는 25퍼센트까지 상승되게 되며, 한편 그 외 31퍼센트가 사모펀드와 실물자산(Commodities)에 배분되었다. 전통적인 주식과 채권에 대한 직접투자의 비중은 그 10년 사이에 90프로 이상에서 30프로 이하로 떨어졌다.

스웬슨이 CIO로 취임한지 20년이 지난 2005년이 되자, 예일대학교 연기금은 1985년의 10억달러에서 14배가 증가한 140억 달러로 증가해 있었고, 그 중 기부금 순증분을 제외하고 순수한 운용수익이 무려 78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니까 스웬슨이란 CIO 한 사람을 영입함으로써, 예일대학교는 78억달러, 한화 8조5천억이란 천문학적 금액을 한번에 쾌척하는 억만장자 한 사람을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를 이루었다는 말이 된다. 이 보다 더 수지가 맞는 장사가 어디에 있을까?

2014년 현재, 예일대학교 연기금의 총액은 208억 달러(한화 약 22조원 상당)라고 하며, 85년 취임 이래 스웬슨은 해마다 평균 12%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예일대학교에 안겨주었다. 물론, 금융위기 시점인 2009년에 전년대비 23%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여 “예일 모델이 과연 유효한 것인가?”라는 일부 언론의 비판을 불러오기도 하였으나, 그 다음해인 2010년에 곧바로 다시 21%의 경이적인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 이러한 비판을 숫자로 잠재운 바 있다. (그의 투자철학이 잘 드러나 있는 2권의 저서가, 2000년에 출간된 “Pioneering Portfolio Management: An Unconventional Approach to Institutional Investment” 및, 2005년에 출간된 “Unconventional Success: A Fundamental Approach to Personal Investment이다.)

스웬슨이 예일대학교 연기금에서 행한 투자사례의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특히, 바야흐로 한국도 진정한 노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연기금이 국내 운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말이다. (자신이 달마다 꼬박꼬박 내고 있는 연금이 제대로 운용이 안 되어, 나중에 자신이 은퇴하고 나서 받게 될 금액이 초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과연 밤잠이 제대로 오는 사람이 있을까?) 스웬슨은 연기금의 투자방식을 개혁하여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인물일 뿐 아니라, 소위 말하는 “사건중심(Event-Driven) 헤지펀드”라는, 특정 유형의 헤지펀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 “사건중심 헤지펀드” 관련하여서는 다음 시간이 살펴보도록 하자.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부문 팀장

[약력]
= 1969년생. 연세대학교 법학과 및 동 대학원 법학석사 취득. 성균관대학교 법학박사 과정 수료. JP모건, BNP파리바, HSBC 등 글로벌IB에서 근무하였고, KDB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부장, 삼성증권 IB본부 이사를 거쳐 현재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부문 팀장으로 재직 중.

=저서 및 역서로 "KKR스토리", "풀스골드", "헤지펀드열전", "헤지펀드의 진실; 펀드메니저의 고백", "사모펀드의 제왕", "포스너가 본 신자본주의의 위기"등 다수. 한국경제신문 등에 정기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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