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로 변신한 직장 선배…사진마다 안티 댓글 "내 SNS 오염됐네"
일보다 힘든 회사 SNS 관리
매일 콘텐츠 구상에 골머리
지인에게 '좋아요' 클릭 구걸까지
훈훈한 노란물결 캠페인도
노란리본 프로필 사진으로
세월호 참사 슬픔 나누기도
[ 김은정/안정락/강경민/강현우/김동현 기자 ]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보편화하면서 확실히 편해졌다.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수시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취향과 일상생활에 대한 공유를 할 수 있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기 마련. 업무 회의마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카카오스토리에 올려 놓은 사생활을 들키기 일쑤다. 주말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상사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짜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에 대한 뒷담화가 가득한 페이스북에 상사가 친구 신청을 해와 난감한 경우도 있다. 카카오톡 채팅방을 헷갈려 십년 감수한 사연부터 상사 눈을 피해 SNS를 즐기는 방법까지 김과장 이대리의 우여곡절 많은 SNS 애환을 들어봤다.
○“나이 어린게 죄? 왜 제게 시련을…”
중소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이 대리(30·남)는 최근 새로운 스트레스가 생겼다. 회사 홍보와 마케팅 활동에 꼭 필요하다며 상무가 회사 이름의 페이스북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낸 게 화근이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고 패션 감각이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들은 이 대리를 몇몇 상사가 페이스북 관리자로 추천했다. 그러나 이 대리는 SNS에 관심이 없어 개인 페이스북도 쓰지 않는 ‘소신파’였다.
회사 일을 거부할 수 없는 법. 이 대리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홍보할 수 있는 글과 새로 나온 상품에 대한 설명을 지속적으로 올리면서 페이스북을 관리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클릭해 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기도 한다.
“어휴, 모든 회사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계정이라 부담이 장난이 아닙니다. 페이지 공유 수가 적으면 괜히 눈치 보이고 의기소침해지고요. 매일매일 올려야 할 콘텐츠 고민에 자다가도 벌떡 깰 정도예요.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시도 때도 없는 상사 카톡에 경기
정보기술(IT) 회사에 근무하는 김 과장(36·남)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 카카오톡에 부서 이름으로 만든 단체 채팅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업무 지시를 하는 차장 때문이다.
“평일에는 그렇다고 쳐요. 주말에도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채팅방에 띄우면서 ‘이렇게 고쳐보자’ ‘이건 좀 어색하다’ ‘다른 아이디어는 없느냐’고 계속 메시지를 날린다니까요. 무시할 수도 없고, 모처럼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단체 채팅방에서 알림이 오면 짜증이 확 밀려와요.”
특히 메시지를 보내는 속도가 느려서 채팅방에서 별로 말이 없는 부장이 얼마 전에 ‘수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글을 남긴 뒤 차장의 메시지 횟수가 더 늘었다. 김 과장은 “분명히 편해진 점도 많지만 주중과 주말의 구분이 없어지고 뭔가 족쇄가 채워진 기분”이라고 하소연했다.
○눈치 보이는 ‘먹방 사진’
올초 잡지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유모씨(27·여)는 최근 페이스북에 글을 거의 올리지 않고 있다. 유씨는 수시로 맛있는 음식과 예쁜 카페 등을 찍어 올리는 ‘페이스북 헤비유저(다량 이용자)’였다. 대학교 선후배들과도 페이스북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눴다.
입사한 뒤 상사들이 한꺼번에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모두 받아준 게 문제였다. 상사들이 유씨의 페이스북만 계속 들여다보는지 “애인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간 거야?” “어제 술 한 잔 사준 선배는 뭐하는 사람이야”라는 프라이버시 침해성 질문부터 시작해 “요즘 여유 있나 봐. 그렇게 글 올릴 시간 있는 걸 보면”이라는 타박 섞인 글까지 올렸다.
“이건 뭐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바로 회사 사람들에게 사생활이 노출된다니깐요. 즐겨 올리던 ‘먹방 사진’(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상사들이 한 마디씩 할까 봐 못 올리겠어요.” 유씨는 “친구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 공개를 안 할 수도 있지만 이제 와서 그러기엔 뭔가 불안하고 애매해졌다”며 “처음부터 그러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아부(?)의 또 다른 창구
금융회사에 다니는 최 과장(33·여)은 같은 부서에 있는 한 대리(31·여)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옆 부서에서 근무하던 한 대리가 올초 같은 부서로 발령받기 전까지 카카오톡 부서 단체 채팅방은 그저 야근자 보고나 회사 일정 등을 내부 공유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싹싹하고 애교 많은 한 대리가 채팅방에 들어온 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아침마다 채팅방에 “오늘도 활기찬 하루 보내자고요~”라는 인사를 날리는가 하면 어느 순간부터 부서원들의 생일까지 일일이 챙기기 시작했다. 부서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임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날이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이모티콘과 함께 “우리 부서 최고! 오늘 저녁 간단히 회식 콜?” 등의 메시지도 남겼다.
무뚝뚝한 부장도 그리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채팅방의 활력소 한 대리를 오프라인에서도 살갑게 대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채팅방에서 아무 말 없이 일만 하는 최 과장에게 은근히 서운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성격적으로 그런 게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실생활에서도 무뚝뚝한 성격이 스트레스였는데 채팅방에서도 비교되는 것 같아서 괜히 위축되는 거 있죠.”
○노란 리본으로 슬픔 나누기도
SNS를 통해 동료애와 가족애, 슬픔을 나누는 사례도 있다. 제지업체에서 근무하는 박 대리(32·여)는 최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리본 이미지로 바꿨다. 세월호 참사 이후 부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에 참여하자’는 얘기가 나와서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 실종자들이 무사히 가족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의미다. 대학생 연합 동아리에서 시작해 전 국민이 동참하고 있는 캠페인이다.
프로필 사진을 바꾼 직장 동료들은 채팅방에서 “유족들이 빨리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등의 위로를 나눴다. 박 대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진위가 확인되지도 않은 괴담이 검증 없이 떠돌아다니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분노에 가득 찬 글들을 보면서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 같았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SNS라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은정/안정락/강경민/강현우/김동현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