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안아주고 다독이고…학생들이 오히려 "선생님 괜찮으세요?"

입력 2014-04-24 21:27
수정 2014-04-25 03:47
세월호 참사
단원고 9일만에 수업 재개

먹먹한 등굣길…"너무 우울하고 힘들어"
학생·선생님 서로 위로하며 마음 추스려
수업은 '심리치료' 위주…교사 치유도 시급


[ 박재민 기자 ]
24일 오전 8시20분 안산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의 1교시 수업종이 울렸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임시 휴교에 들어간 단원고 3학년 수업이 재개됐다. 9일 만이다. 오전 7시 단원고 교문 앞. 수업시작까지 1시간 이상 남겨둔 이른 시간이었지만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고만 없었다면 삼삼오오 걸으며 재잘거렸을 학생들이다. 하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고,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그저 앞만 보며 묵묵히 걸었다. 교문 주변의 노란 리본과 국화꽃, 그리고 무사귀환을 바라며 붙여 놓은 형형색색 쪽지글에 잠시 눈길이 멈출 뿐이었다.

한 교사가 교문을 지나는 남학생을 불러 세우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학생도 교사의 등을 어루만졌다. 서로를 위로하는 듯했다.

김모군은 “사고 이후 그냥 담담하게 있었던 것 같다”며 “학교 오는 길이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대입 준비로 바쁠 시기인데도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서 벗어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모양은 “학교가 쉬는 동안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TV만 봤다. 사고 이후 하루종일 멍하게 시간만 보냈다”고 했다.

이날 3학년 505명 중 480명이 학교에 나왔다. 24명은 사망자 유족이거나 발인 일정에 참여했고, 1명은 결석했다.

등교는 했지만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1교시는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서로를 안아주며 인사하는 감정표현 수업이 진행됐다. 2, 3교시는 정신과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트라우마 떠나보내기’라는 수업이었다. 4교시엔 학급회의를 열어 학생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낮 12시엔 단원고 관계자들이 나와 학생들의 상태에 대해 브리핑했다.

3학년 학생부장 김모 교사는 “학생들이 큰 슬픔을 서로 위로하며 잘 이겨내고 있다”며 “오히려 선생님께 ‘괜찮으시냐’고 묻는 것을 보고 그 따듯한 마음과 성숙한 태도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정운선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은 “교사가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학급은 아이들도 대체로 상태가 양호했다”며 “학생들 치유도 중요하지만 교사들을 회복시키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는 28일부터는 1학년 학생들과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않았던 2학년생 13명이 등교한다. 구조된 2학년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상훈 고려대안산병원장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74명의 학생은 심리치료 과정을 더 지켜보고 등교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며 “치료 학생 전원이 다 같이 복귀하는 것이 심리적인 안정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낮 12시10분 수업을 마친 학생 3명이 먼저 교문을 나왔다. 왼쪽 가슴엔 ‘근조(謹弔)’라고 적힌 검은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이들은 100여m 떨어진 올림픽기념관 임시 합동분향소로 향했다. 이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올림픽기념관을 찾아 조문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동네 주민 박기형 씨(62)는 “아내도 이번 사건 이후 잠을 잘 못 자는데 저 어린 학생들은 오죽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안산=박재민 기자 indueti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