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교통편 태부족…온통 공사판
이주 공공기관 "편의시설도 거의 없어"
공공기관 직원 10명 중 9명 나홀로 이주…'기러기 도시' 되나
[ 하인식 / 강종효 / 임호범 기자 ]
울산 우정혁신도시로 이전한 지 1주일 된 근로복지공단 직원 450명은 지난 21일에도 출근전쟁을 벌였다.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장현동에 임시 숙소가 있지만 회사로 연결되는 주진입로가 고가차도 공사로 차단돼 20~30분 더 걸리는 우회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두 대의 통근버스를 놓친 직원은 흙먼지로 뒤덮인 공사현장을 한 시간 이상 걷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며 “직원들 사이에 울산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벌써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지방 10개 혁신도시에 115개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주거와 교통, 교육 등 사회기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직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혁신도시에 이주한 공공기관은 30여곳에 이른다.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대부분 공공기관의 입주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생활 여건은 녹록지 않다.
우정혁신도시의 근로복지공단 건너편에 들어선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매주 200~300명씩(연간 1만5000여명) 전국 기업체의 안전·보건 담당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안전교육이 차질을 빚고 있다. 수강생들은 KTX 울산역에서 혁신도시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없어 택시비가 2만원 이상 든다며 공단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울산역에서 좌석버스를 타면 정류장에 내려 20분 이상 걸어야 한다.
지난해 말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가스안전공사는 직원 대부분이 서울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강모씨(39)는 “직원용 숙소는 물론이고 시외버스터미널 식당 편의점 세탁소 하나 없는 허허벌판과 같다”고 말했다.
원주의 강원혁신도시에는 흔한 중국집도 없어 외식을 하려면 차를 타고 원주시내로 나가야 한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이 같은 불편 호소에 해당 지방자치단체들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년까지 추가 입주해야 할 공공기관이 85개에 달해 건물 신축과 사회기반 시설 확충에 따른 입주 직원들 불편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입주 공공기관 직원들은 사업 완료 때까지 교통 불편은 물론 먼지와 공사 소음 등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처지다.
지난달 광주전남혁신도시에 입주한 우정사업정보센터의 경우 직원 350명 중 60명(17%)만 전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대구혁신도시에 이전할 11개 공공기관 직원 3202명 중 혁신도시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은 직원은 6.9%인 223명에 불과하다. 충북혁신도시도 3060여명 가운데 분양받은 사람이 4.3%(84명) 수준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남동발전 등 11개 공공기관이 입주하는 경남혁신도시는 3574명 가운데 11.8%인 422명이 분양을 받았다. 하지만 경남혁신도시에서는 LH가 전체의 85%인 362가구를 분양받아 10개 공공기관에서는 60가구(1.6%)에 불과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분양을 받고도 실제 원룸 등의 임시 숙소에 거주하는 직원도 많아 부산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공공기관 직원의 90% 이상은 혁신도시에 나홀로 이주한 상태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나름의 지원책을 내놓으며 이들을 실거주자로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울산시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주하면 자동차 구입비 50만원과 이사비용 100만원, 고등학교 입학시 장학금 100만원 등 최대 4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충북도는 직원 자녀가 도내 고등학교에 전·입학하면 1회에 한해 50만원의 장려금과 배우자 취업알선, 문화·체육시설 이용료 감면 등의 지원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으로는 이들을 지역주민으로 유인하기는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재호 울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입주 초기 불편을 겪었던 세종시처럼 혁신도시도 자칫하면 ‘기러기 도시’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공공기관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지역민과 융화합할 수 있도록 정주여건 개선과 사회활동 참여기회 확대 등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창원·대전=하인식/강종효/임호범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