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금리 하락·주가 상승 vs 실업률 26%·실물경기 '암담'
외국인, 국채 보유 규모 1830억유로…3년만에 최고
무디스 "수출 등 개선 추이…경기회복 속도는 제한적"
[ 김보라 기자 ] 201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 당시 ‘문제아’였던 스페인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스페인 국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몰리면서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금제도와 은행 시스템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과감한 개혁과 유럽중앙은행(ECB)의 대규모 양적완화 기대감이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실물경기가 아직 본격 회복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긴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10년 국채수익률 9년 만에 최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클레이즈의 자료를 인용, 외국인의 스페인 국채 보유량이 현재 1830억유로(약 263조원)로, 2011년 4월(1880억유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페인 10년물 국채금리는 연 3.07%로 2005년 이후 최저다. 5년물 국채금리도 미 국채수익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스페인 정부가 미국 정부와 비슷한 비용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휴 워싱턴 바클레이즈 채권투자전략가는 “스페인의 외국인 국채투자 비중은 남유럽 주변국으로 함께 분류되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포르투갈보다 훨씬 높다”며 “투자자들이 스페인의 구조개혁 속도가 빠른 것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의 경제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3, 4분기 각각 전 분기 대비 0.1%와 0.2% 늘어 9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터널을 벗어났다. 지난해 수출은 2340억유로(약 336조38억원)로 1971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식시장은 지난 1년 새 약 26% 올랐다.
스페인 정부는 2012년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해 임금을 낮췄고 수출경쟁력을 강화했다. 금융시스템도 대대적으로 바꿨다. 정부는 자본건전성이 떨어지는 은행의 구조조정을 유도했고, 대형 은행들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뛰어들었다. 이 결과 은행들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1위 은행 산탄데르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보다 두 배 늘었고, 2위 은행 BBVA의 순이익도 5억5000만유로 증가했다.
○실업률 여전히 26%…내수 침체
문제는 내수 경기다. 강도 높은 고용시장 개혁으로 생산성은 높아졌으나 실업률이 26%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올 2, 3월 연속 하락해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소비심리는 여전히 위축돼 있고, 교육·의료부문 공공지출은 수년째 제자리다.
공공부채도 심각하다. 재정위기 때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GDP의 95%에 육박한다. 미국계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낮은 물가와 소비 침체로 2018년까지 스페인의 공공부채가 GDP의 118%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스페인 경제가 수출과 개혁을 동력으로 명백히 개선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지만 대규모 부채 감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회복 속도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인 체감 경기가 바닥에 머물면서 국채금리 하락세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스페인의 국채금리 하락이 투자자들의 신뢰 상승 때문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