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명문 홍대, 합격하려면… 실기전형 없앴더니

입력 2014-04-22 07:03
수정 2014-04-22 10:36
[인터뷰] 류춘호 홍익대 입학관리본부장
대입자소서 '수상실적 기재 0점처리' 무관



[ 김봉구 기자 ] “석고상 데생 실기시험 감독을 들어갔다 깜짝 놀랐어요. 이젤을 놓고 수험생이 왼쪽 45도에서 보고 그리는데, 글쎄. 석고상 코가 반대 방향으로 나오는 겁니다. 아예 석고상은 보지도 않아요. 수백 번 학원에서 연습한 대로만 그린 거죠.”

지난달부터 홍익대 입학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류춘호 교수(사진)는 경영학자다. 그는 미술엔 문외한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국내 미대 중 최고를 다투는 홍익대에 입학할 학생이기에 더욱 그랬다.

홍익대는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해 미대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없애는 실험에 나섰다. 5년 전 비(非)실기전형을 도입했으며 2년 전부터 100% 비실기전형으로 전환했다. 그림만 잘 그려선 홍익대 미대에 못 간다는 의미다.

본부장실에서 만난 류 교수는 “실기시험이나 대회 수상실적은 일체 보지 않는다” 며 “기존 실기전형은 예술에 필요한 창의성이나 미적 재능과 무관하게 단지 사교육에 훈련된 수험생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15일 ‘2015학년도 학생부 전형 자기소개서·교사추천서 공통양식’을 공개하면서 대입 자기소개서에 수상실적을 기재할 경우 0점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선 수상실적을 주요 평가기준으로 활용해온 예체능계 입시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란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류 본부장은 “구태여 실기능력이나 미술대회 수상실적을 확인하지 않아도 미대생을 선발하는 데는 문제 없다”고 자신했다.

수험생에게 자소서가 아닌 ‘미술활동 보고서’를 제출받아 평가하기 때문이다. 활동보고서는 수험생의 미술교사가 기술하는 일종의 추천서. 미술대회 수상실적 같은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기재되지 않는다. 판화수업이나 스케치여행, 미술교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등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담고 있다.

류 본부장은 활동 보고서를 ‘상당히 구체적인 추천서’라고 부연했다. “실기 전형보다 이런 시스템이 본연의 취지에 더 부합한다는 게 내부 평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교육에 수없이 훈련된, 예술보다는 숙련된 기술자에 가까운 수험생에 유리한 실기전형은 의미 없다는 게 젊은 미대 교수들의 의견” 이라며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사교육을 받지 못한 수험생은 합격이 어려운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100% 비실기전형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엘리트 예체능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던 ‘사교육 장벽’은 비실기전형 시행 이후 무너졌다. 지난 2007~2009학년도 3년간 홍익대 미대 합격자를 한 명도 배출 못한 166개 고교가 비실기전형을 전면 도입한 2013~2014학년도엔 합격자를 냈다.

다소 떨어질 우려가 있는 입학생들의 실기능력은 대학 커리큘럼에 실기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끌어올렸다.

류 본부장은 “사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2학년 때 실기수업을 거치면 대부분 교수들이 요구하는 수준까지 올라온다” 며 “전체 성적 역시 비실기 전형 합격생들이 이전에 비해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균형감을 갖추고 창의성과 잠재력도 지닌 인재를 뽑을 수 있게 됐다는 것.

올해는 정부 방침에 따라 미술계열 입시(예술학과 제외) 수시모집 비율을 줄였다. 수시 비율은 전년(77%)보다 9%포인트 축소된 68%, 정시 비율은 32%. 수시 1·2차를 하나로 통합해 선발하는 게 달라진 점이다. 수시전형은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구 입학사정관전형)으로 나눠 선발한다.

류 본부장은 “수험생에 따라 이 전형에 알맞은 학생도, 저 전형에 맞춤한 학생도 있다. 전형을 간소화한다 해서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라며 “핵심은 학생 선발방법을 단순화하는 게 아니라 서류 등 입시 준비를 간소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홍대의 특성이 자유분방한 분위기인 만큼 열심히 공부해 의사 되고 싶어하는 학생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개인의 소신이 뚜렷한 학생들을 원한다” 며 “면접에서도 이런 점에 포커스를 맞춰 뽑을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