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근로·통상임금 기준, 법 따로 해석 따로 "어느 장단에 맞추나"…혼란에 빠진 산업현장

입력 2014-04-20 21:16
수정 2014-04-21 04:01
사법·입법·행정 엇박자

통상임금 소송 221건…올 임단협 변수
국회 노사정소위 표류 속 해법 못 찾아


[ 이태명/강현우 기자 ]
2012년 3월,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이 제기한 휴일근로 중복할증 소송에서 법원은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1주일의 개념이 5일이냐, 7일이냐’가 쟁점이다. 1주일을 5일로 보면 기업(사용자)은 휴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50%를 줘야 하지만, 1주일이 7일이면 통상임금의 200%(휴일근로 150%+연장근로 50%)를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같은 해 제기된 네 건의 유사소송에서 법원은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주요 노동현안에 대한 사법·입법·행정부 간 엇박자가 늘고 있다. 법 조항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같은 법원에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고, 혼란이 가중되면 뒤늦게 입법부가 법 개정에 나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행정부의 지침과 다른 법원 판결도 최근 잇따르고 있다. 산업현장에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엇박자 내는 사법·입법·행정

대표적 사례가 정리해고 문제다. 입법부(국회)가 만든 근로기준법에는 ‘정리해고 제한’ 조항(제24조)이 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기 위해선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그러다 보니 법 해석은 오로지 사법부 판단에 좌우된다.

1990년 대법원은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개연성이 있는 경우’라고 판결내렸다. 이후 20여년간 법원은 회사의 경영상 판단을 대체로 존중해왔다.

그런데 최근 법원에선 정반대의 판결을 내놓기 시작했다. 올해 3월 대법원은 자동차 부품업체 P사 근로자들이 낸 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더라도 ‘인위적 구조조정을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노사 합의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법원은 경영판단에 따른 정리해고를 인정해왔는데 최근 갑자기 판결 방향이 바뀌고 있다”며 “법이나 정부지침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어떤 경우에 정리해고가 가능한지 판단 내리기가 더욱 모호해졌다”고 지적했다.

통상임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명확한 법 규정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정부가 1988년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통해 ‘1개월을 넘어 지급되는 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명시했다. 이 지침에 의거해 1990년 대법원이 ‘통상임금은 1개월 단위로 지급되는 급여’라고 판결을 내렸고, 이후 법원 판결도 대체로 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2012년 3월 대법원이 금아리무진 소송에서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산업현장에 일대 혼란이 야기됐다.

결국 대법원은 작년 12월 전원합의체를 열어 ‘고정적·일률적·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수당만 통상임금’이라고 정리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정부가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개정했지만 유사소송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입법부도 뒤늦게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논의에 착수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산업현장에선 소송 급증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느냐’를 두고서도 혼선이 일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주일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1주일’이 5일인지, 7일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조문이 없다. 정부 행정지침에도 정확한 규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90년 대법원 판결이 지난 20년간 ‘1주일’의 판단기준이 됐다. 대법원은 당시 강원산업 관련 소송에서 ‘1주일=5일’이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2012년부터 법원에서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기 시작한 것. 서울고법은 2012년 말 휴일 근로 관련 소송에서 ‘1주일=7일’이란 판결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에 제기된 4건의 유사소송에서도 2심법원 세 곳은 ‘1주일=7일’이라고 판단한 반면, 한 곳은 ‘1주일=5일’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둔 가운데 입법부는 근로시간 단축 법안에 ‘1주일=7일’이란 점을 명확히 하자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입법 불비’와 이에 따른 사법부의 제각각 해석이 반복되면서 관련 소송만 늘어나고 있다. 통상임금 관련 소송(누적기준)은 작년 8월 187건에서 올해 2월 말 221건으로 늘었다. 작년 말까지 4건에 불과했던 휴일근로 관련 소송도 올 들어 3건이 추가로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법·제도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주요 노동현안에 대한 법원·국회·행정부 해석이 다르고,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내리면서 산업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태명/강현우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