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농산물 사전 수급조절 기능 강화를

입력 2014-04-20 20:35
수정 2014-04-21 05:32
노재선 <서울대 농경제학 교수 jaesunro@snu.ac.kr>

과잉생산, 소비감소로 채소값 폭락
중국산 수입확대도 하락세 부채질
농협 중심 선진유통시스템 갖춰야


지난겨울 평년보다 높은 온도와 재배면적 증가로 올 상 반기에도 주요 채소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감소로 지난해 정부와 민간에서 저장해둔 마늘 양파 등의 재고량이 많아 채소류 가격은 전년에 비해 30~70%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정부는 배추 무 등 과잉생산 물량을 줄이는 시장격리(산지폐기), 수매비축 등의 카드를 썼지만 과잉물량이 워낙 많아 단기적으로 수급균형을 회복하는 데 한계를 보이는 상황이다.

농산물 생산량은 기본적으로 면적 증감에 따라 변화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생산기간 중 강수량 온도 등 기상여건과 병충해 등 작황에 의한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례로 2012년산 양파 재배면적은 2만1000㏊로 2013년산(2만㏊)보다 4.4% 많았음에도 수확기인 봄철 고온과 가뭄 영향으로 2013년산보다 8% 적은 120만t 수준에 그쳤다. 장단기 기상전망에 따라 수급대책을 수립해 놓았는데 이처럼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이 생길 경우 단기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농산물 유통문제 해결을 위해 이전과 달리 농산물 유통구조개선과 농산물 수급문제를 구분해 접근하고 있다. 농산물가격이 급등락할 경우 수급조절위원회의 합의와 수급조절 매뉴얼에 따라 우선 생산자와 생산자단체 등이 자율적으로 수급조절을 추진하도록 하고, 그럼에도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정부가 개입해 수매비축, 생산된 물량의 산지격리 혹은 산지폐기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올겨울 무 겨울배추 양파 마늘 등에 대해 이와 같은 대책이 추진됐고 소비확대를 위한 홍보 및 가격 할인행사 등이 이뤄져 일부 품목은 가격 하락사태가 조금은 완화됐지만 일부 생산자단체는 과잉 재고물량에 대한 수매폐기와 수출 지원을 통한 가격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자단체가 시장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지역농민만을 위해 높은 가격으로 수매한 물량까지 정부가 수급대책을 추진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고, 정상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있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 최근의 긴박한 가격폭락사태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현재와 같은 가격폭락이 국내 과잉생산 외에 중국산 냉동마늘과 다진 양념, 김치 수입으로 인한 국산 채소류 소비감소에도 원인이 있다면 정부는 이에 대한 근본 대책과 함께 강력한 원산지 단속을 실시해야 한다. 주요 채소 가공업체, 외식업체, 대형유통업체들도 국산 채소류 소비확대를 위한 동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생산자단체인 농협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품목별 대표조직을 중심으로 자율적 수급조절 기능을 강화하고,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선진 유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격이 급등락한 뒤 대책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위험 징후를 감지해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자가 모두 참여하는 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의 사전적 수급조절 기능 강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 관측을 통한 보다 정교한 생산 전망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 정부 들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관측 기능을 대폭 강화한 바 있어 일단 이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기대를 해본다.

농업인은 생산한 물량을 걱정 없이 제값에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는 품질 좋고 안전한 농산물을 적정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생태계 조성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농업인과 단체, 소비자 학계 정부가 머리를 진지하게 맞대야 실행 가능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노재선 <서울대 농경제학 교수 jaesunr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