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에 쪼그라든 뇌…'툭'하면 '욱'하게 만든다

입력 2014-04-19 03:51
수정 2014-04-19 11:17
이준혁 기자의 생생헬스

인터넷 중독 250만명사…용하는 뇌 부위 달라…마약 중독 상태와 비슷
만족 느끼는 '도파민' 계속 분비…가상·현실 구분 못해 충동적
뇌질환 약물과 상담으로 치료…매일 조금씩 줄이는게 바람직


[ 이준혁 기자 ]
최근 인터넷 게임에 빠진 20대 초반의 아버지가 생후 28개월 된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20대 남성이 인터넷 게임을 그만하라는 모친을 폭행해 숨지게 했다. 인터넷 중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현재 한국 인터넷 사용자의 9.8%인 250만명이 인터넷 중독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 중독은 뇌질환

컴퓨터로 하는 업무·수업 등이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인터넷 환경에서 보낸다. 하지만 이를 중독으로 보지는 않는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의 연구 결과 컴퓨터를 많이 쓰는 직업군의 뇌는 ‘좌측대상회’가 주로 작동했다. 반면 온라인 게임·도박 등 인터넷 중독자는 ‘좌측시상’이 활성화됐다. 한 교수는 “컴퓨터 직업군은 정해진 시간과 규율에 맞춰 인터넷을 이용하는 반면 게임·도박 중독자는 일상을 파괴하면서 몰두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뇌 부위가 다르다”고 말했다.

김상은 분당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팀은 인터넷 게임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의 뇌를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검사한 결과 전두엽 등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 것을 최근 확인했다. 마약 중독과 유사한 형태의 중독현상이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인터넷 중독은 이제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뇌질환”이라고 강조했다.

◆참을성 떨어져 툭하면 화내

유한익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가 인터넷에 쉽게 중독되는 이유는 인터넷에 영화·게임·음악·성(性) 등 무궁무진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터넷은 익명으로 자신을 숨기고 현실의 통제와 구속을 벗어나는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점이 이용자를 빠져들게 만든다.

이영식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터넷에 몰두하면 뇌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게 하는 물질인 도파민이 계속 분비된다. 도파민은 뇌의 전두엽을 자극하는데, 이 자극이 계속되면 충동을 자제하는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인터넷에 중독된다”고 말했다. 전두엽 기능에 이상이 생길 때 발생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 중 인터넷 중독자가 많은 것이 이 때문이다.
◆중독상태, 스스로 자각 못해

인터넷 중독자는 대부분 자신이 인터넷 중독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인터넷 중독자는 통상 하루 네 시간 이상 인터넷을 한다.

두 시간 미만이라도 지나치게 집착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지 않을 때 초조해지는 증상이 느껴진다면 위험신호다. 이럴 때는 가까운 사회복지관이나 시·구청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중독 상담센터를 찾아 상담해볼 필요가 있다. 상담센터에서는 인터넷 중독의 원인을 찾은 뒤 인터넷 사용일지 작성법이나 인터넷 사용계획 등을 세워 스스로 통제하는 방법을 지도한다. 유 교수는 “인터넷을 중단하기 싫어서 식사를 거르거나 밤을 새울 정도로 인터넷에 몰두하는 사람, 인터넷 때문에 업무나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과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과 치료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상담치료 등으로 이뤄진다. 약물치료는 주의력 개선제와 충동성을 조절하는 약 등을 보통 6개월 이상 처방한다. 인지행동치료는 인터넷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 다른 생각을 떠올려 충동을 분산시키게 하는 연상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한다. 예컨대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 인터넷 게임을 떠올린다면 게임 대신 운동이나 친구를 만나는 등 다른 행동을 연상하게 돕는다.

◆운동·모임 등으로 충동 분산

인터넷 중독 치료에는 부모나 직장동료 등 주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단 컴퓨터를 모두가 볼 수 있는 거실에 두는 등 인터넷 충동을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다.

이 교수는 “인터넷을 갑자기 안 할 수는 없다. 이미 ‘중독 상태’인 충동적 욕구를 폭력·도박·약물 등 다른 방식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하루에 30분 정도씩 천천히 단계적으로 사용시간을 줄여 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인터넷을 하느라 놓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술·담배·도박 중독과는 달리 인터넷 중독은 치료를 받더라도 100% 끊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인터넷이 없으면 회사 업무나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중독된 직장인에게는 당분간 인터넷을 덜 쓰는 업무를 맡기는 등 회사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인터넷 중독은 개인의 질병이라기보다 사회 시스템적 문제이기 때문에 장시간 온라인 게임을 하면 게임 캐릭터의 능력이 자동적으로 떨어지는 ‘중독 방지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사회와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 이영식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