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안전불감증 이대론 안 된다

입력 2014-04-18 20:34
수정 2014-04-19 05:41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형 참사
안전 총괄할 독립기구 설립 등
안전의 생활화 위한 장기계획 필요"

김두현 < 충북대 교수·안전공학 한국안전학회 부회장 dhk@chungbuk.ac.kr >


일어나서는 안 될 후진적인 인재(人災)가 그치지 않고 있다. 1993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를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많은 사람이 안전불감증 운운하며 해상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관계기관들은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한동안 사회가 부글부글 들끓었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지금, 인천~제주를 오가는 세월호 여객선 침몰로 수학여행길의 어린 학생들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지난 겨울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로 아까운 대학생들이 희생된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실종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기를 희망하며, 신속한 구조활동으로 우리 어린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희생자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하는 사회적 책무도 크다.

세월호 항해를 책임진 선장과 선사를 질책하고, 미숙한 행동요령을 지시한 선사관리자를 비난하고, 구조자 통계의 혼선 및 늑장 초기구조로 일관한 국가기관을 질타하고, 학생을 못 지킨 학교를 원망하는 말과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또 한동안 그렇게 들끓을 것이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라는 주장과 함께 구속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그것으로 끝일 것이란 게 안타깝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비슷한 사고를 철저히 예방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이번 참사는 우리 사회 전반의 허술한 안전의식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다. 촘촘해야 할 안전의식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언제 어디서 대형 사고가 터질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개개인의 안전의식 수준도 낮기는 마찬가지다. 큰 사고가 나도 급하게 얼렁뚱땅 처리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반복되는 사고의 사회적 비용과 충격이 너무나 크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안전을 가장 높은 가치로 인식하고, 안전의 생활화를 추구해야 한다. 안전의식은 일조일석에 형성되지 않는다. 적절한 안전조직과 지속적 투자를 통한 장기적 접근이 동반돼야 한다. 안전조직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제도적 기반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방재보다는 안전 개념이 우선돼야 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안전을 총괄할 수 있는 독립기구의 설립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독립기구가 안전에 관한 한 무한책임과 권한을 갖도록 하고, 안전을 위해서는 다소의 불편함을 감내하는 분위기가 우리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안전관리가 우수하고 안전업무를 중시하는 회사들은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안전조직을 두고, 이를 통해 사고예방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국가나 회사가 자율안전에 도달하기 이전의 안전은 엄중한 규제 하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안전관련 규제를 철폐대상 규제로 보는 것은 안전의 가치를 모르는 무지의 산물일 뿐이다.

산업현장이나 연구시설만이 안전관리 대상은 아니다. 현재 정부는 산업현장 및 연구실험실에 대해 안전관리 제도를 구축하고 필요시에 벌칙을 부과하는 등 시스템적 접근을 통해 안전관리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이를 거울삼아 선박, 항공, 리조트 등과 같이 위험요인이 크다고 판단되는 분야에 안전전문 인력이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그들을 통해 상시 위험성 예견, 비상대응 시나리오 설정 및 습득, 안전교육 및 훈련 등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게 해야 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늘려 안전사회를 구현하는 게 복지사회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할 것이다.

김두현 < 충북대 교수·안전공학 한국안전학회 부회장 dhk@chungbu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