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이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계모에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0~15년을 선고한 데 대해 말들이 많다. 아동학대라는 중대범죄를,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에 어떻게 그렇게 낮은 형량을 선고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소위 국민의 법감정과 실제 판결 사이에 너무나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재판부는 살인의 경우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어 살인죄 적용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민들의 공분이 있는 것은 알지만 엄연한 형법상 범죄 구성요건이 있고 이에 따라 적용할 형량이 있는데 국민들이 분노한다고 국민 감정에 맞게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의붓딸 상해치사 사건에 살인죄를 적용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살인 고의성 충분…아동보호 더 엄격해야”
울산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사건 발생 뒤 아동보호전문기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유관기관 간담회와 부장검사단 회의, 검찰 시민위원회 회의 등을 거쳐 이번 사건 피의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의자 박씨가 8살 의붓딸을 1시간 동안 머리 가슴 배 등 급소를 포함한 신체 주요 부위를 집중적으로 때렸다”며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 양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얼굴이 창백해진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폭력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또 “피의자가 죽일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양의 갈비뼈 24개 가운데 16개가 부러지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사망에 이른 점을 보면 살인의 고의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여성변호사회는 “터무니 없이 낮은 형량”이라며 “아동학대는 일반인의 잣대와 다른 양형기준을 적용해 엄벌해야 한다”며 재판부의 선고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하늘소(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 대표 공혜정씨는 “정치권이 엄벌 방침을 밝히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이에 역행하는 판단을 내렸다”며 검찰의 즉각 항소를 촉구했다. 같은 모임의 민정숙 씨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받았어요. 이건 일회성이 아닙니다. 어른들끼리 실수로 치고 받다가 실수로 죽이는 그런 상해치사가 아니란 말입니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gksrnrtlfdj’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은 “의붓딸 죽인 계모는 정말 잔인하다. 사람도 아니다. 이런 인간들을 왜 살려주나”라며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반대 “국민 감정만 따르면 법치 훼손할 수 있다”
판결을 내린 울산지법은 “박씨가 훈육이라는 명목 하에 아이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병원에 데려가는 등의 행동을 반복해왔지만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만한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아이가 의식이 없자 계모가 119에 전화하고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박씨에게 아이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의심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고의가 없어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하긴 했지만 죄질이 나빠 양형기준상 권고형량(4년~13년)보다 높은 15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대구지법 역시 “법의 엄중한 잣대로 판단해 혐의를 인정한 것”이라면서 “특히 선고된 형량은 최근 선고된 아동학대치사죄 형량보다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 가운데도 이번 사례들에서 무조건 살인죄를 적용하자는 주장은 무리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는 사람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두 사건에서 계모나 친부 등 부모들의 행동은 도저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인 만큼 이들이 아무리 큰 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하다는 게 대부분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라고 전제했다. 그는 그러나 국민 감정이 매우 괘씸하다고 이들을 무조건 사형과 같은 중죄로 다스리는 것은 법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이라는 것은 실체적인 진실을 밝힌 뒤 법이 정하고 있는 일정한 범죄 구성 요건이 충족될 경우 양형기준을 참작해 형을 선고하는 것인데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국민감정을 앞세워 가중처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생각하기
살인죄는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사람을 숨지게 했을 경우 적용되는 형법이다. 법정 형량은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고, 최소 징역 5년 이상이다. 상해치사죄는 살인의 고의 없이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로 때렸는데 살인의 결과가 발생할 경우 적용된다. 형량은 무기징역은 선고할 수 없고, 3년 이상의 유기징역만 선고할 수 있다.
이번 두 가지 사건에서 계모들이 자녀를 살해할 의사가 있었는지가 이번 재판의 핵심이다. 대법원은 부모나 어른의 아동 학대치사의 경우 살인죄를 적용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피고인이 범행 당시 살인의 범의는 없었고 단지 상해의 범의만 있었을 뿐이라고 다투는 경우에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동기, 사용된 흉기의 유무,종류, 용법, 공격의 부위와 반복성, 사망의 결과발생 가능성 정도 등 범행 전후의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이런 기준을 적용할 때 살해 의사 여부를 판단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차후 항소심에서 다시 다루어지겠지만 갈비뼈 대부분이 골절될 정도라면 상급심에서는 살해 의사가 있는 것으로 번복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상급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다. 다만 차제에 아동 학대에 대해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는 별도로 좀 더 엄격한 처벌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으로 형법이나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