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호 기자 ] “엄마 안개가 많이 껴서 출항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침몰한 여객선인 세월호(인천~제주 운항)에 탑승했던 안산 단원고 학생 일부는 15일 저녁 각자의 부모님과의 통화에서 “안개가 많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세월호는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30분 인천항을 출발한다. 이들이 통화한 시간은 오후 7시께로 예정 출발시간을 넘긴 상태였다. 일부 학생은 “오늘 출발을 못 할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날 오후 8시30분께 수학여행에 참가한 단원고 학생 325명 등 승객 459명은 세월호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후 9시께 세월호는 승객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목적지인 제주도 여객터미널 도착 예정시간은 16일 낮 12시였다. 승객들에 따르면 출발 당시에도 인천항에는 안개가 낀 상태였다.
순조롭게 항해하던 세월호는 도착 4시간을 남긴 16일 오전 8시께 ‘쾅’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순간 선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다급해진 승객들은 급히 몸을 피하고 반대편 갑판 위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선내에는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말고 자리에 머물러 달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침몰하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피하려던 사람들도 이 방송을 듣고 멈칫했다.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대기했지만 세월호에 물이 차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전 8시30분께 세월호는 물에 본격적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선내에는 다시 한번 혼란이 찾아왔다. 일부 승객들은 “물이 차오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며 구명조끼를 입고 밖으로 나와 대기하기 시작했다.
구조된 한 학생은 “배 안이 물에 잠기는데도 방송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했다”며 “배가 기울면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져 허리와 다리를 다친 사람도 많았다”고 밝혔다. 선원 김모씨(61)도 “배가 갑자기 기울어 신속히 빠져나왔다”며 “빠져나오는 데 바빠 다른 사람들이 구조됐는지, 조치를 취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들은 급한 마음에 바다 위로 몸을 던졌다. 구조된 단원고 김모양(16)은 “현장에서 갑자기 뛰어내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듣자마자 바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오전 8시58분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해상에서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 중이라는 신고가 목표 해양경찰 상황실에 접수됐다. 신고를 받은 해경은 헬기를 사고 현장에 급파했고 30여분 뒤 도착한 헬기를 이용해 승객 구조에 나섰다. 침몰지역을 빠져나온 승객들은 밧줄을 묶어 다른 승객들을 끌어올리면서 이 상황을 함께 버텼다. 이어 사고현장에는 해경, 유관기관, 관공선, 민간어선 등이 동원돼 인명수색과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오전 11시께 세월호는 완벽히 침몰됐다. 하지만 승객들은 여전히 세월호 안과 밖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구조된 한 승객은 “곧바로 대피안내를 내렸다면 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