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CEO, 사장실 없애고 까페 만들라 지시한 까닭은

입력 2014-04-16 13:34
[ 권민경 기자 ]

투자업계, 불황 탓 움츠러든 직원 '기 살리기' 동분서주

# 지난 15일 오후,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서울 여의도 한 증권회사 건물 6층. 긴장의 끈이 팽팽히 당겨져 있는 사무실을 지나 한 쪽 끝으로 가니 색다른 풍경 안에 있는 직원들이 눈에 띈다. 서너 명의 무리 중 한 명은 창 밖 전경을 보며 체조 삼매경이다. 다른 한 명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간식으로 먹을 사과를 깎는 동료와 이야기 나눈다.

금융투자업계가 불황 여파로 움츠러든 가운데 CEO들이 구성원 사기 진작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사장실을 직원 휴게실로 내주는가 하면 직원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새로운 개념의 보상 체계를 도입해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16일 동양자산운용에 따르면 지난달 온기선 대표이사 CEO는 자신의 방을 없애고 직원을 위한 사내 까페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젊은층에 인기가 높은 대형 커피전문점인 '까페베네'처럼 원목 가구로 편안한 느낌을 살리라고 인테리어 조언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커피머신과 간식거리, 읽을만한 책까지 갖춘 30여 석 규모의 까페 '휴지통'(休止通)이 탄생했다. 쉴 휴(休), 그칠 지(止), 소통할 통(通)으로 '업무에서 벗어나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쉬라'는 뜻의 이름이다.

한 쪽 공간에는 여직원만을 위한 휴게실도 따로 만들었다. 굽 높은 구두를 벗고 편안히 쉴수 있도록 보일러가 들어오는 따뜻한 방이다. 온 대표 방은 휴지통 반대편에 전보다 작은 크기로 들어섰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부임한 온 대표가 직원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 없다는 걸 고민하다 직접 방을 내줬다"며 "전에 없던 휴식 공간이 생긴 덕에 직원들도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잠깐씩 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쁜 업무 때문에 자주 까페를 찾진 못해도 회사가 구성원을 위해 신경 써준다는 것 자체가 직원들로서는 좋은 일"이라며 "외부에서 업무 차 들른 사람들도 이 공간을 보고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김신 SK증권 사장은 지난 2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직원 자녀에게 직접 작성한 편지와 선물세트를 보냈다. 가정의 평안이 직원들에게 힘이 되고, SK증권을 '건강한 회사'로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편지를 통해 "멋진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부모님을 위해 즐겁게 학교 생활 해나가길 바란다"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어린이가 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SK증권은 지난해 연말 200여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일시적 비용을 포함해 지난해 영업손실은 578억 원에 달해 전년(116억 원)보다 손실액이 397% 늘었다.

큰 선물은 아니어도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주는 CEO 모습에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는 후문.

지난달 취임한 장승철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직원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앞서 취임사에서 "금융의 기본은 사람"이라며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건강한 가정과 행복한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나대투 관계자는 "장 사장이 IB부문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직원들과 격의없는 만남을 가져왔다"며 "사내 음악 동호회를 포함해 소통과 교류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새로운 보상 체계를 도입해 직원 기 살리기에 나섰다. 회사가 아닌 고객의 돈을 벌어주는 직원에게 '잘했다'고 포상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712명 자산관리자들을 대상으로 매월, 분기, 연간 단위로 고객 총자산 수익률을 평가한다. 그 결과를 우수직원 포상과 인사고과뿐 아니라 성과급까지 확대했다. 고객이 돈을 벌어야, 직원도 행복하고, 회사도 수익이 난다는 강대석 사장의 경영 철학에 따른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매매중개수수료로 얼마를 벌었느냐가 아니라 고객수익률을 평가 기준으로 삼으니 고객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쪽에 더 힘을 쏟게 된다"며 "직원들도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진다며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