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배치만 바꿔도 조직혁신 가능
10분 글로벌 경영서 - 창조주식회사
[ 뉴욕=유창재 기자 ]
세계 최고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PIXAR). 그곳 회의실을 13년 동안이나 차지하고 있던 대형 회의용 테이블은 디자인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양쪽 끝에 앉은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야 서로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테이블 폭이 좁고 길었다. 에드 캣멀 사장은 이 테이블이 픽사의 핵심적인 기업문화를 망쳐왔다는 사실을 13년 동안 몰랐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그와 존 라세터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등 픽사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리더들은 늘 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아이디어 토론에서 소외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자리 배치는 조직의 위계질서를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픽사의 원칙과 완전히 상반된 결과였다. 캣멀 사장은 이를 발견한 즉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회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주문했다.
캣멀 사장이 지난달 내놓은 책 《창조 주식회사》의 부제는 ‘진정한 영감을 가로막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극복하기’다. 1995년 픽사의 첫 작품인 ‘토이스토리1’을 성공시킨 캣멀 사장은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자 ‘이제는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숙고 끝에 그는 ‘창조적 기업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제2의 인생 목표로 삼았다.
《창조 주식회사》는 그가 20년 동안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온 삶의 기록이자 픽사의 성장 스토리다. ‘아이디어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기 위해선 협업과 열린 문화가 필수적이다.’ 캣멀 사장은 이런 철학을 픽사 조직 곳곳에 구현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했다.
예를 들어 픽사 기획팀의 역할은 여타 할리우드 영화사들과 다르다.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역할 대신 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그러면 그 인재가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개발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인수하고 경영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