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풍수] 근거없는 '서향 사옥' 괴담

입력 2014-04-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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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서쪽을 바라보는 사옥에 대한 섬뜩한 괴담이 있다. ‘서향(西向) 사옥을 쓰면 흉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서향 빌딩에 입주한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일종의 징크스로 떠올랐다.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에 입주했던 대우그룹은 1999년 외환위기를 맞아 해체됐고, 창립 40주년을 맞아 사옥(현 게이트웨이타워)을 지은 벽산건설도 재무위기를 맞아 1998년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갑을빌딩을 사옥으로 쓴 갑을방직도 문을 닫았다.

서울 남영동에서 서향 사옥을 쓰던 해태도 위기를 겪긴 마찬가지였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에 있는 30층 높이의 ‘아스테리움 서울’에는 코끼리상이 설치돼 있는데 서쪽의 호랑이 기운을 막고자 마련된 것이다. 문제 있는 땅을 보완해준다는 ‘비보 풍수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업들이 서향 건물을 기피하는 이유는 ‘지는 해’의 방향이라 사업체 성장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서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도 서쪽보다 동향을 선호한다. 이것은 두 개의 건물을 나란히 올린 그룹 사옥의 경우 회장실은 예외 없이 동쪽 건물에 배치하는 풍조를 낳았다.

LG그룹은 주력계열사인 LG전자가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에 있는데도 회장 집무실은 동관에 뒀다. 서울 양재동의 현대자동차그룹 사옥도 정몽구 회장 사무실은 역시 동관에 있다. 회장실을 서쪽에 두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서향 건물이 흉하다는 속설은 풍수상 근거가 없다. 다만 ‘주택의 서쪽에 큰 길이 있으면 길하다’고는 한다. 도심에서 도로는 사람의 생명활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바람이 통과하는 길이다.

집을 지을 땐 건물을 대지의 서쪽에 몰아서 짓고 동쪽은 가급적 넓게 비워서 뜰로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즉 큰 도로가 있는 서쪽을 등진 채 반대쪽에 출입문이나 현관을 만들면 소음과 공해가스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강한 저녁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좋다.

도로가 서쪽에 있는 땅이라면 건물을 서향으로 짓지 말고 도로를 등지고 동향으로 지어야 풍수에 맞는다는 얘기다. 대지 동쪽에는 반드시 진입로가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역 건너편의 서향 빌딩들은 대부분 서쪽에 펼쳐진 대로변에 위치하고 정문이 서쪽을 향한 경우가 많다. 도로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다. 만약 배산임수를 무시하고 동향으로 건물을 지으면 이것은 ‘배수진을 친 집’이 돼 오히려 재물운이 약화된다. 따라서 남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서울역 맞은편은 동고서저의 지형이라서 서향 건물이 지세에 순응한 것이다.

결국 ‘서울역 괴담’은 실체 없이 부풀려진 뜬소문에 불과하다. 경제 불황과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들의 불운이 우연히 서향 사옥과 겹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처럼 기업 잔혹사에 대해 애꿎은 땅을 탓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