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암과 연관 불명확"
[ 양병훈 기자 ] 담배를 피운 적이 있는 폐암 환자 등이 “담배의 유해성을 숨겼다”며 담배 제조사 KT&G 등을 상대로 낸 국내 최초 ‘담배 소송’이 15년 만에 원고 패소로 끝났다.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고, 제조사인 KT&G와 국가가 담배 유해성을 은폐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흡연력이 있는 폐암 환자·사망자 및 가족 등 30명이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고 가운데 흡연자는 6명이며 1950~1960년대부터 담배를 피워오다 1990년대 말 폐암·후두암 진단을 받자 1999년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폐암과 흡연 사이에 역학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특정 흡연자가 흡연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이후 그러한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역학적 인과관계’는 다수의 집단 구성원과 특정 질병 사이의 통계적 관련성에 주목하는 데 반해 ‘개별적 인과관계’는 연령과 면역체계 등 개인별 신체 특성을 감안한 관련성을 따지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은 흡연과 특정 암 발병의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될 수 있지만, 적어도 이번 원고들 사례에선 흡연과 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담배의 위해성을 일부러 숨겼다거나 담배에 설계상·표시상의 결함 등이 있다고 볼 증거도 없다”며 “흡연 여부는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비슷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30년 이상 담배를 피운 폐암·후두암 환자 3484명을 모집했으며 KT&G를 상대로 총 537억원의 진료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