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제때 꽃이 피려면

입력 2014-04-10 21:21
수정 2014-04-11 04:11
누렸던 안락에 대한 자연의 역습
에너지절감·재활용 몸에 배어야

민형종 < 조달청장 hjmin@korea.kr >


미국에 처음 갔을 때 크고 긴 승용차들이 맨 먼저 눈에 띄었다. 말 그대로 ‘기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차들이 거리에, 주차장에 즐비했다. 미국 문화의 상징처럼 보였다. 종이 접시와 플라스틱 포크, 칼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색달랐다. 쓰레기통마다 일회용품으로 넘쳐났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 모습도 그와 닮아 갔다.

미국 서북부 몬태나 주엔 산봉우리들이 빙하로 덮인 국립공원이 있다. 아름다운 호수, 원시림, 야생동물로 유명한 곳이다. 거기에 미국 공병단이 깎아지른 절벽 위로 낸 길이 있는데 어느 해 여름 그 길을 가다 빙하 녹은 물이 암벽을 타고 눈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걸 봤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TV에 비친 그 공원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두껍고 넓게 퍼져 있던 빙하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딴 곳 같았다. 이대로 몇 년 후면 그 ‘눈물 절벽’은 볼 수 없게 된다.

날씨가 널을 뛴다. 지난 주중까지만 해도 봄을 느낄 새도 없이 여름이 된 것 같더니 주말엔 꽤 쌀쌀했다. 107년 만의 3월 이상 고온으로 꽃들이 한꺼번에 피는 바람에 여기저기 꽃 축제가 어긋난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멋모르고 나온 벌들이 얼어 죽을까 걱정하는 분도 있다. 날씨 때문에 얘기꽃도 만발이다. 요즘 예보를 듣지 않고 외출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된 세계적 현상이다. 그리고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을 마음껏 소비한 결과다. 큰 차로 멋지게 다니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됐던 안락과 편리함의 대가를 지금 혹독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30%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산 및 소비의 효율 제고, 재활용, 절약만이 답이다. 그동안 물건을 사면서 에너지소비량 같은 환경요소를 고려하고, 재활용품을 우선해 왔다. 구매물자의 3분의 1가량이 친환경·녹색 제품이다. 그런데 재활용산업 종사자분들을 만나 보면 여전히 판로의 어려움을 얘기한다. 재생용품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모두 나설 때다. 기업은 에너지절감 기술개발에 더욱 힘을 쏟고, 소비자는 아끼면서 재생용품도 즐겨 쓰는 습관이 배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그린 조달’을 강화하고, 정부 물품을 보다 아껴 쓰도록 할 계획이다. 벌써 피어버린 라일락꽃을 5월에 보기 위해.

민형종 < 조달청장 hjmin@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