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수확(early harvest) 방식을 택한 ‘발리패키지’의 타결은 국제무역에서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도하개발어젠다(DDA) 성공의 핵심 열쇠가 될 겁니다.”
최석영 주제네바국제기구대표 대사(사진)는 8일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특강에 나서 이 같이 말했다. 조기수확 방식이란 우선 합의가능한 분야에서 협상을 진전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이른바 발리패키지 타결이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거둔 첫 성과임을 강조했다. 일괄타결 방식을 고수해 2001년 출범 후 줄곧 난항을 겪은 DDA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가시적 결과물을 내놨다는 것. 다자간 무역체제 신뢰회복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발리패키지는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타결이 쉬운 분야부터 우선 논의키로 한 합의물을 가리킨다. 일괄타결을 고집하지 않는 대신 △무역 원활화 △일부 농업 협상 △개도국 협상 등 3개 사항을 골자로 했다.
최 대사는 “WTO가 다자간 무역체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무엇보다 새로운 협상 모멘텀을 얻은 점이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따라서 올해는 DDA 협상에 대단히 중요한 해”라며 “발리의 성공을 발판으로 WTO가 다자간 무역체제 구축에 본격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DDA의 핵심 분야인 농산물, 비농산물(NAMA) 시장 접근, 서비스 등이 협상 대상으로 남아 있다”며 “특히 농업 분야는 각국 무역 이익과 직결돼 협상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자간 협상이 난항을 겪는 요인으로는 ‘균형’을 꼽았다. 최 대사는 “사실 외교관계에서 균형은 주관적 개념”이라며 “입장에 따라 같은 사안이 180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이익불균형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선진국들이 주도한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트렌드에도 주목했다. 미국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 위주의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대표적이다. 그는 “역내 강대국의 경제패권 다툼에서 한국은 중립적 위치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박희진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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