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바위산 기암괴석 사이로 펼쳐지는 판타지
이스탄불에서 차를 타고 아홉 시간을 달렸다. 눈앞에 펼쳐진 카파도키아의 풍경을 마주하고 “아!”를 연발했다. 마치 ‘아’라는 외마디 감탄사 외에는 아는 단어가 없는 사람처럼 몽롱해진다. 광활한 땅 위에 끝없이 겹쳐지고 포개진 기암괴석들의 모습은 온전히 신기(神氣)하다. 알쏭달쏭했던 신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는 느낌이다. 신이 빚은 듯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신을 좇는 사람들이 숨어들어 만든 경이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땅, 카파도키아다.
카파도키아는 왜 유명한가
카파도키아는 터키어로 ‘명마들이 많은 곳’이라는 뜻의 고대 지명이다. 터키 지도를 펼치면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네브세히르 주와 카이세리 주 사이에 적갈색으로 드넓게 펼쳐진 부분이 카파도키아다. 300만년 전 에르시예스 산에서는 대규모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화산재를 뒤집어 쓰고 굳어진 땅 위에는 수십만년의 시간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였고 몇 차례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후 끊임없이 일어난 침식과 풍화를 거쳐 다채로운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가득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기암괴석 곳곳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수두룩하다. 전쟁과 침략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사람들은 은신하기 위해 굴을 팠다. 처음으로 괴석에 동굴을 뚫어 거처를 마련한 누군가는 손쉽게 부서지는 응회암의 부드러운 질감에 감탄하며 신의 자비와 구원을 찬양했을 것이다.
실크로드 이전부터 유럽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카파도키아는 많은 제국들의 침략이 빈번했다. 고대 히타이트에 이어 프리지아, 리키아, 페르시아, 알렉산더, 로마, 비잔틴, 셀주크튀르크, 오스만튀르크가 차례로 카파도키아의 주인이 되었다. 어쩌면 모든 정복자들은 카파도키아의 위대한 자연경관을 마주한 후 이 땅이 욕심나 밤새 잠 못 이뤘을지도 모르겠다. .
인생 최고의 경험, 열기구 투어
새벽 4시 반, 기온이 찬 새벽에만 운행하는 열기구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낮에는 반팔을 입을 정도로 덥더니 아침 저녁으로는 변덕스럽게 싸늘하다. 콧속으로 들이치는 싸한 새벽 공기에 잠이 달아난다.
차가 도착한 곳은 기암괴석 사이의 넓은 평지다. 스태프 예닐곱 명이 미리 도착해 거대한 풍선에 가스로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처져 있던 풍선이 제법 볼록하게 모양새를 갖추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열기구 안으로 뛰어오른다.
심장이 귀에 박힌 듯 두근대는 소리와 출발 신호가 동시에 귓전을 울리고 이윽고 둥실 떠오른다. 30m쯤 오르자 바위 산과 기암괴석들 너머에 숨어 있던 수십 개의 열기구들이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풍선을 부풀리는 가스불이 어둡고 광활한 땅 위에 반짝반짝 수를 놓는다. 마치 다른 행성에 불시착해 외계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대면하는 느낌이다.
40리에 달하는 대지 위에 우뚝 선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자아내는 풍광은 어스름한 여명 아래서 더욱 우아하다. 발아래 있던 수십 개의 열기구들과 함께 해가 떠오르고 측광에 반사돼 빛나는 기암괴석들의 결이 더욱 짙어지자 모두가 탄성을 지른다. 알록달록한 열기구들이 알알이 박힌 붉고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절경은 눈물을 쏙 뺄 만큼 아름답다.
동승한 모든 사람들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본전 생각 안 나는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득히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을 고요히 감상한 1시간의 비행이 끝나면 착륙 지점에서 샴페인을 곁들인 간단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웅장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하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은 빛난다. 무사히 착륙했다는 안도까지 더해져, 모두가 열기구에 탑승하기 전보다 훨씬 아름다워졌다.
바위계곡의 속살
아득하게 보이던 바위산의 속살을 보기 위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우치히사르다. 터키어로 ‘3개의 요새’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괴레메 골짜기의 전경과 피존 밸리가 한눈에 펼쳐지는 고지대다. 과거 수도사들이 비둘기를 기르며 살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피존 밸리라고 부른다.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된 곳으로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기묘한 풍광을 볼 수 있다.
버섯 모양의 괴석들이 즐비한 파샤바 계곡은 벨기에의 작가 피에르 클리포드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그가 파샤바 계곡을 방문하고 그린 작품이 스머프다.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 사이사이를 누비다 보면 아지라엘과 비슷한 고양이들을 자주 만난다. 조용히 고양이 뒤를 밟았다. 만화 속에서 아지라엘이 스머프를 쫓은 것처럼, 어쩌면 진짜 스머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레는 상상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이렇게 기묘한 풍경 앞에선 환상을 꿈꾸기 마련이다. 터키 사람들은 송이버섯 모양의 바위 안에 실제로 요정이 살고 있다고 믿어 왔고 그런 이유로 파샤바 계곡의 바위들은 요정이 춤추는 바위라고도 불린다. 이 외에도 낙타 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데브란트, 일몰쯤 장밋빛으로 물드는 기암괴석의 절경이 일품인 로즈밸리도 아름답다. 근방의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은신한 지하도시 데린쿠유도 꼭 들러봐야 할 유적지다.
여행팁
◈교통 이스탄불이나 앙카라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이스탄불에서는 차로 10시간, 앙카라에서는 4시간 정도 걸린다. 터키 현지에서는 하루 50달러 정도에 차를 빌릴 수 있으므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레저 카파도키아의 바위 계곡 곳곳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자전거와 ATV, 오토바이 등을 빌릴 수 있다. 열기구 투어는 1인당 170유로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이스탄불이나 현지에서 잘 찾아보면 조금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카파도키아(터키)=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