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새 주택 85% 외국인이 소유…러·中 부호, 뉴욕서도 거액 투자
"거품 조장"…부작용 우려도
[ 이정선 기자 ]
“런던의 부동산시장이 조지왕조 시대(1714~1830)로 회귀했다.”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투자 과열 분위기를 띠고 있는 런던의 부동산시장을 가리켜 이같이 진단했다. 조지왕조 시대 막대한 부를 쌓고 있던 공작, 백작들이 런던 일대의 호화 저택을 앞다퉈 사들였던 것처럼 당시 귀족을 대신해 ‘슈퍼 프라임’급 부동산 쇼핑에 나서는 해외 거부들의 움직임을 빗댄 말이다.
FT는 부유한 개인이 금융위기 이후 각종 개발사업을 구제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은행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연쇄 파산을 맞았던 과거의 개발·투자 관행과 달리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개인들이 부동산시장을 이끄는 새로운 주축으로 부상했다는 뜻이다.
영국 부동산전문조사업체 셰빌스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00만달러(약 105억원) 이상의 고가 부동산 거래의 35%는 개인 펀드가 차지했다. 영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런던의 ‘올림픽빌리지’ 아파트 단지를 카타르 국영 부동산투자 회사인 카타르 디알이 개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런던에서 가장 높은 샤드(Shard)빌딩의 지분 95%도 카타르의 투자자가 갖고 있다. 런던 하이드파크도 카타르의 전 총리(셰이크 하마드 빈 자심 알 싸니)와 캔디 브러더스사가 공동 투자한 회사 소유다.
가디언도 이날 “지난해 런던에 들어선 새 주택의 85%가 비(非)영국인 투자자 소유”라며 “대부분 모스크바 쿠알라룸푸르 베이징 싱가포르 등의 투자자들이 부동산을 현찰로 덥석 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런던 고급주택 가격은 평균 11.6% 뛰었다.
런던과 더불어 해외 거부들이 눈독을 들이는 미국 뉴욕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리서치 회사 밀러 사무엘에 따르면 맨해튼의 아파트와 타운하우스 구입자의 40%가 외국인이다. 미국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는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1년간 중국인 개인 자본이 사들인 미국 부동산이 123억달러(약 13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부호 드미트리 리블로프레프가 2011년 8800만달러(약 930억원)에 사들였던 ‘15센트럴파크 웨스트’도 잘 알려진 사례다. 뉴욕타임스는 “새로 개발되는 부동산의 절반 이상은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해외에서 온 투자자가 구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거부들의 투자가 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런던은 투자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뒤 비워 놓는 곳이 많아 이른바 ‘유령 타운’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을 올리면서 거품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지왕조 시대 일반인의 접근을 막아 거센 항의를 받았던 귀족 사유지들의 폐쇄적인 소유 형태도 재연되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사들인 영국 리버풀 중심의 일부 거리와 브리스틀의 캐벗 서커스, 런던의 스트랫퍼드 등의 지역은 이미 민간 경비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고 있다.
FT는 해외 투자자가 사들인 지역에 대해 “자전거 통행은 물론 거리 공연, 사진 찍기, 정치적 집회가 허용되지 않는다”며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먹고 마시는 행위도 금지된다”고 꼬집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