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니에 장준영 대표 "어깨 각도 재는 기구, 목이 굽었는지 재는 기구…체형 재는 도구만 10여종"

입력 2014-04-05 18:00
Luxury & Style

"고객들이 100% 신뢰하는 이유죠"


[ 김선주 기자 ] 대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월급도 조금 주는 데가 있다기에 문을 두드린 곳이 한국폴리텍대의 전신인 국립 중앙직업훈련원 양복학과다. 1966년 9월, 그렇게 남성복과 인연을 맺었다.

장준영 봄바니에 대표(65)가 50여년 동안 남성복을 탐구하는 장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다. 몇몇 양복점에서 수습생 생활을 하다 1971년 서울 명동 코스모스양복점 재단사로 들어갔다. 양복점을 인수한 것은 1977년. 현 매장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지하로 이전한 것은 7년 뒤인 1984년이다.

최고급 맞춤 정장을 추구하는 봄바니에 슈트는 최저 110만원에서 최고 2300만원까지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전·현직 장·차관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여당 대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유명 배우 등이 이곳을 찾았다.

방미 사절단에 포함된 장·차관들이 백악관 환영 만찬 때 입을 턱시도를 단체로 주문한 적도 있다. 남성복뿐 아니라 봄바니에웨딩에서 만든 예복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배우 전도연이 입은 예복,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배우 최명길 커플이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2005년 7월 ‘리마인드 결혼식’을 할 때 입은 예복도 그의 작품이다.

“고객의 체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기본입니다. 다른 양복점에서는 보통 줄자로 재지만 저는 어깨 각도를 재는 기구, 목이 굽었는지를 판단하는 기구 등 치수 관련 도구 10여종을 직접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고객도 치수를 재고 나면 저를 100% 신뢰하게 되는 이유죠.”

고(故) 배현규 한일투자금융 회장은 장씨의 꼼꼼함에 반해 주문한 정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추가 주문을 하기도 했다. 창립기념일에 임원들에게 선물할 정장 86벌을 주문한 것이다. 한일투자금융은 삼성증권의 전신이다. “86벌이면 그 당시 한 달 주문량이었어요. 배 회장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집 단골이었습니다.”

장 대표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슈트를 주문하는 고객이 가장 안타깝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고위 관료 한 분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마르고 경직된 인상이었죠. 밝은색 슈트를 권했지만 ‘북한에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며 결국 다크네이비 슈트를 고르더라고요. 인상이 더 굳어 보이는데 말이죠.”

그런 안타까움 때문에 봄바니에 상품권을 만들었다. “고객들을 어느 정도 구속하고 싶었어요. 혹여 고객을 놓칠까봐 제 주장을 관철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일단 저희 양복점 상품권을 선물 받아서 온 고객들은 그 상품권을 이곳에서 써야 하는 일종의 구속력이 생기는 셈이니까요.”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