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사라진 사람' 99%는 단순 가출…염전 노예같은 1%가 '위험한 실종'

입력 2014-04-05 09:00
실종수사 전담팀의 세계


[ 윤희은 / 오형주 / 박재민 기자 ]

“이 편지를 받으시는 대로 찾아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 찾아오실 때는 소금을 사러 오는 것처럼 위장해서 오셔야 합니다.” 구로경찰서 실종수사전담팀(실종팀)에 의문의 편지가 온 것은 지난 1월 말. 보낸 사람은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1년5개월째 ‘무일푼 노동’에 시달려온 시각장애인 김모씨(40)였다. 폭행과 감시 속에서 기약 없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6월 구로경찰서에 실종 신고된 사람이었다. “부모님께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다”며 집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연락을 이어오던 아들 소식이 갑자기 끊기자 그의 어머니가 경찰서에 신고했다. 시각장애 5급으로 시력이 보통 사람보다 절반 이하인 아들이라 어머니의 걱정은 깊어만 갔다. 아들로부터 다시 편지가 온 것은 1년여가 흐른 뒤였다.

편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연락이 끊긴 1년간 신안에 있는 홍모씨(48)의 염전에서 하루 20시간의 중노동에 내몰렸다고 했다. 돈은 한푼도 받지 못했고, 잠시 쉬는 모습이 홍씨의 눈에 띄면 폭행이 이어졌다. 김씨는 홍씨 집에서 훔친 펜으로 남 몰래 한 자 한 자 편지를 썼다. 편지는 “이발하러 오라”는 홍씨의 부름을 받고 읍내에 나갔다가 가까스로 부칠 수 있었다.

구로경찰서 실종팀은 편지를 받자마자 신안으로 향했다. 그의 당부대로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했다. 그런데 강제 노역 중인 사람이 김씨만이 아니었다. 지적장애인 채모씨(48)도 2008년부터 노예처럼 일하고 있었다.

실종팀은 우선 김씨를 서울로 올려 보냈다. 지적장애 탓에 탈출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못한 채씨는 경찰 DB(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실종 사실을 확인한 뒤 구출할 수 있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명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미발견 실종자 해마다 증가

그나마 김씨는 기지를 발휘해 ‘지옥’ 같은 염전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경우다. 실종됐지만 찾을 수 없는 미발견 실종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9년 0.2%(3만3142건 중 69건)에 불과하던 실종신고 건수 대비 미발견 건수 비율은 2012년 0.66%(4만2169건 중 281건)로 높아졌다. 작년에는 이 비율이 2.16%(3만8695건 중 836건)까지 치솟았다.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미발견 실종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발견 실종 사건이 늘면서 가장 골머리를 앓는 곳은 일선 경찰서의 실종팀이다. 서울 경찰서 실종팀에는 4~6명의 인력이 배치돼 있다. 실종팀이 처리하는 실종 사건은 한 달에 평균 약 100건이다. 4명이 근무하는 서울의 한 실종팀 팀장은 “팀원 4명이 매달 1인당 25건의 실종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며 “쉬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종 사건은 수사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경찰청 관계자는 “1~2시간 찾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찾을 때까지 수사해야 하기 때문에 일선 경찰서에서 항상 인력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올라온다”고 전했다.

범죄 관련 실종은 고작 1%

경찰서에서 접수하는 실종 신고는 단순 가출이 대부분이다. 단순 잠적을 실종으로 판단한 가족이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경찰의 도움으로 실종자 소재를 큰 어려움 없이 파악한다.

한 예로 지난달 10일 부산 남부경찰서에선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를 남자친구에게 보낸 뒤 사라진 여성을 찾으려고 경찰 20명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여성은 1시간 만에 인근 독서실에서 발견됐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려고 보낸 문자였는데, 이를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오해해 ‘실종신고’를 하는 바람에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경찰서 실종팀이 자주 접하는 유형이다.

한 실종팀 관계자는 “범죄와 연결된 실종으로 판단하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서는데 대부분의 실종 신고는 범죄와 무관한 내용”이라며 “범죄와 관련된 실종 사건은 전체의 1%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처음부터 범죄와 무관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워 1%의 가능성 때문에 나머지 99%의 사건까지 발로 뛰며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진짜 실종’엔 제대로 대응 못해

실종 신고된 사람의 약 20%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종팀이 주력해야 할 ‘진짜 사건’에는 정작 수사력이 제대로 집중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월 치매 노인 장모씨(87)가 실종 보름여 만에 민간인 통제구역인 서울 용산 방위사업청 안쪽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가족들은 장씨가 집에서 나간 당일 관할인 용산경찰서에 신고했고, 해당 서는 즉시 경찰 30여명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인근 지역의 폐쇄회로TV(CCTV)도 모두 확인했다. 그러나 2주에 걸쳐 진행한 수색과 탐문에도 경찰은 장씨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실종 14일 만에 장씨는 집에서 약 1㎞ 떨어진 방위사업청 내 텃밭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해당 경찰서는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실종자 가족 중에는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선 경찰은 나름 고충을 토로한다.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실종 수사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분야인 데다 하루에 2~3건씩 실종 신고를 접수해 모두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중요한 사건인데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잘못 판단할 때가 있다”며 “모든 경찰서 실종팀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우관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은 “지금의 실종팀은 단순 가출자를 귀가시키는 전담 부서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실종팀이 범죄 관련성이 높은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카드 및 통화 내역 조회 어려워 한계

그렇다고 단순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 수단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범죄 연루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실종자 위치 파악은 물론 카드사용 및 통화 내역을 조회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지난 1월 광진경찰서가 1년 만에 찾아낸 실종 여고생도 경찰이 통화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었다면 더 일찍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여고생은 가출 뒤 친구 집에서 1년 가까이 기거하면서도 아르바이트나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 찾는 데 난항을 겪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통화내역 조회나 카드 사용 내역만 확인할 수 있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범죄와 관련 없는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 수단이 제한돼 있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하소연했다.

여기에 최근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면서 가출한 것으로 신고된 실종자에게 전화와 문자로 연락한 뒤 회신을 기다리는 일도 잦아졌다고 한다.

자살 시도가 우려되는 실종자에 대한 위치 추적 제한도 실종팀 수사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한 실종팀 관계자는 “자살 시도가 의심스러운 실종자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곳은 119구급대 정도인데 119와 경찰 간의 공조와 협조 체계가 미흡해 실종자 위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윤희은/오형주/박재민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