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의료 수가' 올려야 하나

입력 2014-04-04 20:46
수정 2014-04-05 04:21
[ 이준혁 / 임원기 기자 ]
정부와 의료계가 지난달 열린 ‘제2차 의·정 협의’를 통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위원 선발 때 의료계 몫을 늘리기로 합의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 입장에서는 이번 합의로 의사들의 ‘집단휴진’이라는 단기적인 의료 대란은 피했으나 ‘의료 수가(酬價·진료비) 인상’이라는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건정심은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와 의료기관의 진료 행위에 따른 건강보험 수가를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이전까지 건정심을 구성하는 24명의 위원 중 의료계 인사는 8명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가 최대 4명의 위원을 더 추천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이다. 친의료계 인사가 12명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이는 다수결 원칙인 건정심 결정을 의사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의료계의 발언권이 커진다면 십중팔구 수가 인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대한의사협회는 현재 진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이 73.9%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환자를 치료하는 데 100원이 들었다면 병원이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수가가 74원에 그친다는 의미다.

원가보전율을 끌어올리려면 수가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수가를 인상하려면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의 다른 쓰임새를 줄이거나 건강보험료를 더 걷어야 한다.

결국 수가 인상은 국민이 건보료를 더 부담할 의사가 있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수가를 1% 인상하려면 연간 27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앞으로 건정심에서 수가 인상폭이나 인상 기간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료수가 인상을 주장하는 김윤수 대한병원협회 회장과 이에 반대하는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부 교수가 지상 논쟁을 벌였다.

찬성 37년째 低수가 정책 묶여…대형병원마저 고사 위기

의료원가율은 73.9%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의료계는 최소한의 재투자비용(수익의 10~15%)까지는 보전해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십년 동안 너무 낮은 수가 체계가 유지되면서 의료계 종사자들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

1977년 건강보험제도 도입 때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무려 37년째 저수가 정책이 지속됐다. 병원은 의료수가로는 도저히 수익을 맞출 수 없는 상태가 매년 반복됐다. 급기야 저가의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첨단 의료장비 사용 등) 진료에 의존하는 사태가 늘어갔다.

정부는 의료비 총량 억제 차원에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대한 수가를 철저하게 통제해왔다. 예컨대 수년째 물가상승률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1~2%를 인상하는 데 그쳤다.

2001년을 ‘100’으로 할 때 2013년 건강보험수가 누적 지수는 123.3이다. 반면 임금인상률 누적지수는 172,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2다. 단면적으로 봐도 상당한 괴리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 규모를 가늠하는 건강보험료율도 한국은 꾸준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5.9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10%를 넘어선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의료원가율이 비용의 75%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 시혜를 하라는 것은 억지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75%도 안되는 원가보전율…OECD 국가중 가장 낮아

국가별 의료수가를 비교해 보면 국내 의료수가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례로 한국 맹장수술의 수가는 약 2000달러로, 가장 비싼 미국(1만4010달러)의 7분의 1 정도다. 호주(5622달러)·스위스(5840달러)·캐나다(6007달러)·칠레(6972달러)도 우리의 2.7~3.4배에 달한다.

1329달러 정도인 국내 백내장 수가도 스위스(5310달러)에 비하면 4분의 1에 불과하다. 제왕절개 수가 역시 한국이 1769달러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싸다.

시술뿐 아니라 영상기기 수가 수준도 한국이 가장 낮다. 국내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수가(78달러)는 미국(584달러)의 13% 정도이고, 캐나다·스페인·프랑스·독일·스위스도 우리와 비교해 최저 1.5배를 넘는 122~425달러다.

공식적인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운데 의료기관들은 비급여 및 주차료, 장례식장, 각종 편의점 등 임대수익으로 간신히 수지(收支)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의 강력한 보장성 확대 정책에 따라 비급여 부문이 줄어들고, 경기 침체에 따른 환자 감소로 인건비, 재료비, 관리운영비 등 비용은 증가하는 삼중고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의 보장성 확대는 저수가 진료를 통해 환자들에게 경제적 수혜를 늘리겠다는 의미이지만, 한편으로 의료산업을 육성하지 못하는 커다란 장벽을 세워두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상급 종합병원(3차 대학병원)들은 대부분 적자의 늪에 빠진 상태다.

의료인의 요람인 대학병원들도 현 정부의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와 선택진료비 축소·상급병실료 폐지 등 의료정책 조정으로 인해 대규모 수익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에서 손실보전 약속을 하고 있지만 보험재정 확충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료계 전체가 헤어나기 힘든 적자의 늪에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당국에선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강조하면서 국민 의료비 증가 억제를 최우선순위로 꼽고 있다. 저가의 진료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의료수가를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못지않게 의료공급자의 지속 가능성도 중요하다. 의료수가 현실화 문제가 제기되면 정부 및 보험자, 시민단체 등에선 늘 의료기관의 경영 투명성 제고 노력과 재무제표 등 경영실태 자료를 요구해왔다.

의료기관 경영분석 등을 토대로 수가 인상률을 제시하는 의료계로서도 투명경영에 따른 정확한 경영수지 분석을 통해 적정수가를 책정해야 한다는 점에 동감한다. 하지만 원가보전율이 70%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비급여나 진료 외 부대수익으로 손실을 보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근본적인 의료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의료수가 적정화를 검토해야 한다.


비급여·임대 수익으로 버텨…양질의 의료서비스 어려워

의료계에선 의료수가 인상이라는 말보다 ‘적정화’ ‘정상화’라는 말을 쓰자는 주장이 많다. 그만큼 오랜 시간 수가가 억눌러 왔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경영수지 결산 자료에 근거해 물가 및 인건비 상승률을 제대로 반영한 수가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 타당하다.

재작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 의료비 비중은 7.4%로 OECD 회원국 평균 9.3%에 크게 못 미친다.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의료비를 쓰고도 다른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의료 수준을 이룩한 것에 대해 의료인들은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통제와 규제 일변도로 의료기관을 옥죄는 정책으로는 의료계가 발전하기 어렵다. 적지 않은 병원들이 고사 상태에 빠져 의료 공급체계가 와해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김윤수 < 대한병원협회 회장 >

반대 의사들 高임금 지키려고 국가재정·국민에 부담 전가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의료계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부에 대폭적인 수가 인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작 수가 인상의 객관적 근거를 제시한 적은 없다. 건강보험 수가는 매년 건강보험공단과 각 의약계 대표(의사협회, 병원협회, 약사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간호사협회)의 계약에 따라 결정되고, 계약이 결렬된 단체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표결로 결정한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가입자 단체 대표들이 ‘병원경영수지 적자가 확인되면 수가 인상에 동의하겠으니 의료계와 공동으로 병원을 직접 방문해 실사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의료계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수가 수준에 대한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사실 객관적 기준은 없다. 의료수가는 진료에 투입하는 각종 인력의 인건비를 보전하기 위한 것인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사의 소득을 얼마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의사들은 현재의 소득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니까 저수가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국민은 의사의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지 않다고 보니까 저수가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건보수가가 원가의 73.9%에 불과하다”는 의사협회의 주장 역시 의사의 소득 수준을 얼마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수가인상 객관적 근거 없어…의사수 늘려 인건비 줄여야

우리와 비슷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유럽에서 의사소득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2~3배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보다 높게 나타난다. 의사는 면허제도에 의해 진료독점권을 가지고 있고 의과대학 입학정원의 규제를 통해 의료시장에서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진료수가에는 건강보험 수가도 있고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정부의 통제권 밖에 있는 비급여 수가도 있다. 이 둘을 합친 수가가 건강보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입인데, 이것이 낮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통계적 근거를 필자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국세청이 접수한 의료기관 재무자료는 경영수지 흑자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수천가지의 진료수가에는 자연분만수가 등 원가에 비해 낮은 항목도 있고,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료처럼 원가보다 높은 것도 있으나 평균적으로 낮다는 근거는 미약하다.

전문과목 간 또는 동네의원 간에도 빈부격차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건강보험 재정을 거의 독식하는 수도권 대형 병원도 있고, 폐업을 고민해야 하는 지방 중소 병원도 있다. 이런 문제점은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 하루에 20~30건을 진료하면서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네의원이 경영에 문제가 없도록 수가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경증 외래환자가 대형 병원에 몰리지 않도록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구조적인 불균형은 그에 적합한 정책수단으로 접근해야 하며, 수가 인상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산업이 평균적으로 적자 상태이면 그 산업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숫자는 감소한다. 그런데 민간 의료기관의 숫자는 지난 수십년간 감소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전국의 민간 의료기관은 4만852개였는데 2012년에는 5만9226개로 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성장하는 산업에서 가격이 낮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혹자는 의료기관 폐업률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다른 산업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진료비 급증…의료산업 배출도 그만큼 늘어

최근 10여년간 경제성장률에 비해 건강보험 재정 지출 증가율이 2배 이상 높았고, 건강보험료 인상률은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보다 5배 이상 높았다. 이는 국민의 경제적 부담 능력을 초과해 진료비가 증가했고 그만큼 의료산업 매출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수가가 인상되지 않아도 진료건수가 늘어나고 의료장비 및 의약품의 사용량이 증가하면 진료비는 늘어난다.

더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이 각종 검사나 시술을 할 때마다 가격이 설정돼 건수가 많을수록 의료기관 수익이 늘어나는 방식, 이른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과잉 진료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현행법상 수가는 일차적으로 건보공단과 의약단체 간의 계약에 의해, 이차적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의결 과정을 거치게 돼 있다. 수가를 최종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인 건정심 위원 구성은 입법 사항인데, 복지부가 건정심 위원 구성에서 의협 측 추천 인원을 확대하겠다고 의협과 합의한 것은 복지부의 정책 집행력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건강보험 수가가 1% 인상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연간 2700억원 정도 증가하고 환자 부담은 1000억원 정도 늘어난다. 여기에 의료급여, 산재보험, 자동차보험의 진료수가도 건강보험 수가에 연동돼 자동적으로 인상되므로 사회보험 재정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뒤이어 기업과 국민의 각종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고, 국고 지원 부담도 늘어난다. 수가는 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유도하는 시그널이고,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담보하는 매우 중요한 정책수단이다. 수가 인상을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진현 < 서울대 간호학부 교수 >

■ 읽을 만한 자료

△전문의 적정수급을 위한 건강보험 수가적용방안(보건사회연구원, 2013)
△한의과대학부속 한방병원의 손익분석(대한예방한의학회지, 2011)
△조산원의 건강보험 수가산출 방법과 추계(여성건강간호학회지, 2011)
△의사인력의 수급실태와 바람직한 해결방안(건강보장정책, 2012)
△고령화를 준비하는 건강보험 정책의 방향(KDI, 2013)

이준혁/임원기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