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라 기자 ]
일본 소비세율이 이달부터 5%에서 8%로 올랐다. 일본의 소비세율 인상은 1997년 4월 이후 17년 만이다. 지난 1일 0시를 기해 일본 전역의 24시간 편의점, 주유소, 백화점 등 모든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상품 가격이 일제히 소비세율 증가분 만큼 올랐다. 택시 요금도 도쿄를 기준으로 710엔에서 730엔(7500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소비세 인상이 성장 없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만 초래할 경우 아베노믹스는 ‘아베겟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엔저 정책 등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일본 경제 회복을 주도해 왔지만 물가가 올라 내수 경기가 위축되면 또다시 장기 침체가 찾아오는 ‘재앙’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령화 대비, 재정적자 감축 목표
일본이 소비세 인상을 단행한 건 막대한 공공 부채와 사회 복지 비용 때문이다. 일본의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넘는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전에는 GDP 대비 230%였던 국가 부채가 지금은 250%까지 상승했다.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번 증세로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에만 5조엔(약 51조원)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 올해 늘어나는 세수 5조엔 중 2조9000억엔은 기초연금 국고부담, 1조3000억엔은 사회보장비 보전, 5000억엔은 육아 지원에 배분될 예정이다. 일본 국민에겐 연간 8조엔(약 82조원)의 생활비 부담이 더해질 전망이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연 수입이 500만~550만엔(약 5600만원)인 4인 가구의 경우, 연 7만1000엔(약 73만원)의 추가 생활비 부담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에서 ‘물건이 비싸지기 전에 사두자’는 사재기 열풍이 불어 1~3월 소비가 4% 정도 늘어나겠지만 4~6월 소비는 4%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험대 오른 ‘아베노믹스’
소비세 인상은 일본 경제에 ‘양날의 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펴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으로 내수 경기가 위축되면 당장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4~6월 GDP 실질성장률이 마이너스 4.1%(전기 대비 연율)로 떨어진 후 7~9월에는 2.2%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1일 발표된 대기업 제조업 업황판단지수(DI) 전망치는 당장 8로 떨어지며 기준선을 크게 밑돌았다. DI는 3개월 후 경기가 좋을 것이라는 응답 비율에서 나쁠 것이라는 응답 비율을 뺀 것으로 18이 기준선이다. 소비세 인상은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 일본은 지난해까지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 효과로 수출 실적이 향상되는 등 긍정적 효과를 누렸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 성장 둔화 등의 요인으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섰다. 엔화 가치는 올 들어 미국 달러화 대비 3%가량 상승했다. 이 때문에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다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일본은 과거에도 소비세 인상으로 혹독한 수업을 치렀던 전례가 있다. 1997년 4월 소비세를 3%에서 5%로 인상했을 때다. 소비세 인상 전 3%였던 성장률은 소비세 인상 추진한 분기에 -3.7%까지 떨어졌다. 소비세 인상 직전 사재기를 하던 소비자들은 외환위기를 만나면서 지갑을 굳게 닫았다. 민간소비는 13.2%까지 급감했다. 이는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인 ‘잃어버린 10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기업들 “소비심리 살리자” 총력전
기업들은 위축된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일본 최대 할인점 이온은 최대 2만개 품목의 가격 인하에 돌입했다. 세금 포함 가격을 인상 전과 동일하게 맞추기 위한 것이다. 소고기덮밥 체인점인 스키야는 전국 1985개 점포에서 규동 ‘보통’ 사이즈의 가격을 세금 포함 280엔에서 270엔으로 내렸다. 맛과 향을 강화한 신제품도 쏟아지고 있다. 식품업체 기린은 이치방맥주의 홉을 10% 더 첨가했고, 아사히맥주는 향을 더한 맥주를 출시했다. 한 카레업체는 기름 함량을 낮춰 칼로리를 줄인 제품을 선보였다.
일본 정부는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5조5000억엔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소비세 인상에 따른 충격 감소 대책은 앞으로 수개월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김보라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