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카페
'자이가르닉 효과' 끝내려면
잘잘못 정리·봉인하고 새출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마 사장. 몇 년 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주변에서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쪽 시장은 이미 사양세로 접어들어 쉽지 않을 거라 말한다. 아이디어가 좋아 충분히 성공할 자신이 있던 마 사장은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을 추진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기존 사업이 좋은 성과를 내서 큰 위기는 넘겼다. 작년에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자 마 사장은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잘될 거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덤볐지만 시장은 그의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 사장은 이번에도 아니다 싶어 일단 사업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미련이 남는다. 마 사장은 바쁜 와중에도 이따금씩 떠오르는 실패의 기억 때문에 괴롭다. 이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수는 없는 걸까.
마 사장은 왜 실패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러시아 출신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27년 오스트리아 빈의 한 카페. 자이가르닉은 여러 동료들과 같이 이곳에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는 종이도 없이 주문을 받았다. 자이가르닉은 메모도 하지 않고 주문 받은 음식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내어주는 웨이터가 신기하게 생각됐다. 웨이터는 다른 테이블에서도 메모하지 않고 정확한 서빙을 하는 것이었다. 웨이터의 대단한 기억력에 감명받은 자이가르닉은 계산을 마친 뒤에 그 웨이터를 불렀다. 웨이터의 기억력을 칭찬한 자이가르닉은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자기 테이블에서 어떤 음식을 주문했는지 말해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웨이터는 당황하며 계산이 끝난 마당에 그걸 왜 기억하느냐고 되물었다.
자이가르닉은 웨이터의 반응을 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하나 고안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 164명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각각 간단한 과제를 내주었다. 실험의 핵심은 A그룹이 과제를 마칠 때까지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고, B그룹은 도중에 중단시키거나 하던 일을 일단 놔두고 다른 과제로 넘어가도록 했다는 점이다. 과제를 마친 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도록 했을 때 B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이 A그룹보다 무려 두 배 정도 더 많은 과제에 대해 기억했다. 더구나 그들이 기억해 낸 과제 중 68%는 중간에 그만둔 과제였고, 완수한 과제는 고작 32%밖에 기억해 내지 못했다.
자이가르닉은 이처럼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우리가 심리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줄곧 남아 있는 일에 미련을 두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심리 현상을 그의 이름을 따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부른다. 하지만 하던 일을 마저 완성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긴장은 풀리고, 기억에서는 잊힌다고 합니다.
마 사장이 실패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이다. 실패한 사업을 완결된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사업이기에 심리적 강박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 사장이 실패의 기억에 대한 심리적 강박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이가르닉 효과를 끝내는 방법에 대해 리시우핑 싱가포르 국립대 연구원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80명을 대상으로 가장 최근에 겪은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를 적어보도록 했다. 그런 후에 한 그룹에는 그 글을 제출하도록 했고, 다른 그룹에는 봉투에 넣어 봉하도록 했다. 그 결과 제출한 그룹에 비해 봉인을 한 그룹이 아픈 기억을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왜 제출한 쪽보다 봉인한 쪽이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리시우핑은 봉인하는 행동이 심리적 차원에서 과거의 문제에 마침표를 찍고 새 출발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패의 아픔을 잊고 싶어하는 마 사장도 스스로에게 실패한 사업에 마침표를 찍고 새 출발을 하도록 선언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실패한 사업을 떠올리고 세세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한 잘됐던 부분과 잘못됐던 부분을 나누어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왜 실패하게 됐는지 스스로에게 피드백해 다른 사업을 추진할 때 도움 받을 부분을 확인해야 한다. 여기까지 준비가 됐으면 이제 정리된 보고서를 봉인해 자신의 무의식에 마침표를 찍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말이다. 봉인된 보고서를 태워 버린다면 무의식에 더욱 강렬하게 전달될 것이다.
이계평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