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파괴 채용 확대] 금융공기업 이어 시중은행도 "어학점수·자격증 안보겠다"

입력 2014-04-03 21:05
수정 2014-04-04 04:03
2014년 채용부터 적용

특정자격 필요한 직무는 별도 선발키로
"일률 적용 곤란…기업 자율 맡겨야" 주장도


[ 장창민 / 박신영 / 김일규 기자 ]
신입사원 채용 때 각종 자격증과 어학점수 등 이른바 ‘스펙’을 따지지 않는 스펙 초월 채용문화 확산을 위해 금융회사들이 앞장서기로 했다. 산업은행 등 18개 금융공기업은 물론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들도 올 신규 채용 때부터 어학 점수와 각종 자격증을 원칙적으로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취업 준비생의 ‘스펙 쌓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스펙을 보지 않고 어떻게 인재를 뽑을 수 있느냐”며 “모든 금융사에 일률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각 금융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채용 가이드라인 만들기로

3일 금융계에 따르면 18개 금융공기업은 ‘채용문화 개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올해부터 자격증과 어학점수를 채용 때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입사 지원 서류에 자격증과 어학점수 기재란을 원칙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특정 자격이 필요한 직무의 경우 별도 채용키로 했다. 다만 기업 성격에 따라 예외적으로 자격증 종류를 명시할 수 있게 했다.

어학점수 기재란도 폐지하기로 했다. 다만 ‘토익 800점 이상’ 등 최저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기업은 모든 전형이 끝난 뒤 합격자에 한해 어학점수를 받기로 했다. 어학 능통자가 필요할 경우 별도 전형을 통해 뽑기로 했다.

여기에 동참하는 기업은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금융공사 코스콤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등 10개 금융공공기관, 금융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등 2개 금융유관기관,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6개 금융협회 등이다.


○시중은행들도 원칙적 동의

주요 시중은행들도 입사지원서에 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등 각종 자격증 소유 여부를 표시하는 공간을 원칙적으로 없애기로 가닥을 잡았다. 토익 토플 등 어학점수도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농협은행은 올 하반기 공채부터 자격증 기재란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 어학점수를 받지 않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우리 신한 하나 등 다른 은행들 역시 올 하반기 채용 때 자격증과 어학점수를 입사지원서 기재 항목에서 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민은행은 이미 2012년 하반기 채용부터 자격증 기재란을 없앴다. 어학점수도 필수 기입 항목에서 뺐다. 전홍철 국민은행 인사팀장은 “지원자가 읽은 책과 그에 대한 감상 등을 평가하는 식으로 ‘통섭형 인재’를 뽑은 결과 일에 임하는 자세, 인성, 조직원들과의 융화 등에서 훨씬 뛰어난 직원들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스펙 안보고 뭘로 뽑나” 반론도

금융공기업은 다문화 가정, 외국인, 경력 단절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취업을 돕는 데도 앞장서기로 했다. 산학협력을 통한 지역 인재 추천 채용과 지방 인재 20% 할당 채용제 등도 권장할 예정이다. 금융회사 근무 경력이 있는 경력 단절 여성 채용도 늘리기로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점검회의’에서 “취업 시 과도한 스펙을 요구하는 관행을 없애는 금융공기업의 움직임이 민간 회사들까지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취업준비생들의 과도한 스펙 쌓기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률적으로 자격증과 어학점수를 보지 말라는 것은 무리”라며 “구체적인 방안은 각 금융회사들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박신영/김일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