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1부> 소프트웨어로 창의인재 키우자 (2)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비결
고교때 SW 익혀 군대서 실무 활용, 대학 안가고 바로 벤처 창업한다
94년부터 고교서 SW교육, 현재 고교생 전체 60%가 배워
상위 15%는 대학 3년 수준
고급 SW인력 넘처나…280개 글로벌 기업 R&D센터 둬
[ 강현우 기자 ]
“지금 보시는 아이들이 이스라엘을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만드는 겁니다.”(도론 조하르 교사·컴퓨터공학 박사)
지난 25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로카흐가(街) 오헬-셈 고등학교. 100㎡ 넓이의 컴퓨터 실습실에 고3 학생 20여명이 4~5명씩 조를 짜서 PC 앞에서 토론하고 있다. 수업 주제는 ‘대규모 접속 사이트의 해킹과 방어’. 학생들은 인터넷 포털이나 온라인 예매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시스템에 해커가 침입하는 상황을 설정한 다음 침입 경로와 공격 단계별로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조하르 교사 등 두 명의 교사는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짧은 조언을 할 뿐이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시스템을 구축해 갔다. 수업 장면을 지켜본 정영식 전주교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국내 대학 컴퓨터공학과 2~3학년 전공 수준”이라며 “다양한 상황을 놓고 실습한다는 점에서 책에서 배운 걸 그대로 해보는 것에 그치는 상당수 국내 대학 전공과정보다 낫다”고 말했다.
“SW 인재 매년 1만명 배출”
이스라엘은 1992년 국가교육위원회 주도로 소프트웨어(SW) 중심의 컴퓨터과학(CS)을 정규 과목으로 만드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보통신기술(ICT)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자는 시도였다. 사방이 이슬람 적국(敵國)인 상황에서 ICT로 군대를 첨단화하는 것은 이 나라의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
1994년 고교 과정부터 총 5단계(1단계에 90시간) CS 교육이 시작됐다. 1~2단계는 컴퓨터의 기초, 프로그램과 논리 등으로 구성된다. 3단계는 간단한 프로그램 제작 등 실습이며 4~5단계는 데이터 처리, 사이버 보안 등 고급 과정이다. 물리 화학 등 다른 과학 선택과목도 5단계까지 수강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 한 학년 10만여명 가운데 절반인 5만명가량이 CS를 3단계까지 배운다. 상위 15%는 5단계까지 듣는다. 고교 졸업생 중에서만 SW를 자유롭게 다루는 인재를 매년 1만명 이상 배출한다는 얘기다.
기자가 가본 오헬-셈 고교는 과학 특성화 학교도 아닌 평범한 공립학교였다. 하지만 한 학년 150명 가운데 50여명이 5단계 CS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징병국가인 이스라엘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고교 졸업 뒤 곧바로 군대에 간다. 남자는 3년, 여자는 1년10개월 복무한다. 이리스 바거리 이스라엘 교육부 과학교육R&D단장은 “고교에서 CS를 5단계까지 배운 학생들은 대부분 8200 같은 ICT 특수부대로 가서 배웠던 걸 실습한다”며 “군 복무 뒤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창업이나 취업할 수 있는 밑바탕이 CS 교육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2010년부터 중학교 단계에서도 CS 교육을 시작했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밍보다는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해 로봇을 이동시키는 수업 등 학생들이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해주는 교육이다. 전국 200여개 중학교 가운데 올해 50여개가 CS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했다.
구글 R&D센터도 이스라엘에
군대에서까지 SW 기술을 갈고닦은 청년들은 대학에 진학해 의학이나 경제학 등 다른 전공을 택해 융합형 인재가 되거나 한층 심화된 CS 교육을 받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3 세계 대학 톱 30’ 순위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4개 대학(히브리대 테크니온공대 등)이 포함됐다.
숙련된 SW 인재가 매년 수천명씩 배출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전 세계 국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SW 엔지니어 기근 현상’을 피해가고 있다. 양방향 온라인 광고 솔루션업체 이노비드의 잭 지그돈 창업자는 “이노비드를 포함한 많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지만 연구개발(R&D)센터만큼은 이스라엘에 두고 있다”며 “이스라엘에선 좋은 SW 엔지니어가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280여개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에 R&D센터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나라가 배출하는 뛰어난 SW 인재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 나라의 2012년 R&D 지출 106억달러 가운데 75%인 80억달러가 해외 기업의 투자였다.
인텔과 IBM, 시스코, 애플 등이 미국 외 지역 최대 R&D센터를 이스라엘에서 운영한다. 구글도 지난해 이스라엘의 교통정보 벤처기업 웨이즈를 인수하면서 R&D센터는 계속 이스라엘에 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SW 교육 시스템은 국가 경쟁력으로도 이어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3 세계 경쟁력 순위’에서 이스라엘은 정보기술(IT), 혁신 역량, 과학 연구, 국내총생산 대비 R&D 지출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 창업국가 start-up nation
세계에서 벤처 창업이 가장 활발한 이스라엘을 일컫는 말이자 그 비결을 전 세계에 소개한 책(사울 싱어·댄 세노르 저)의 제목이다. 이 책은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이 미국 벨연구소 특임연구원 시절이던 2010년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텔아비브=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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