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희 우일이알에스 사장 "식물 자라는 콘크리트로 기업 다시 살렸죠"

입력 2014-03-31 21:41
지금은 女成(여성 성공)시대

경리업무에 현장 영업까지 회사 구하려 동분서주
2년반만에 기업회생시켜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 청라지구 등 공사에 납품


[ 민지혜 기자 ]
김옥희 우일이알에스 사장은 오빠가 운영하던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자 직접 나서 기업회생절차 신청부터 졸업까지 2년 반 만에 모두 끝낸 ‘슈퍼 우먼’이다. 채권단을 일일이 만나 설득해 동의를 구했고, 기업회생절차 인가를 받은 뒤에는 직접 돌아다니며 사업을 수주했다.

그는 요즘도 자잘한 경리 업무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 외부 영업사원은 물론 최고경영자(CEO)까지 ‘1인 4역’을 해내고 있다.

◆오빠가 설립한 회사에 참여

우일이알에스는 하천 제방 등에 쓰이는 친환경 콘크리트 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콘크리트 블록 안을 뚫어 흙으로 채우고 식물 뿌리가 자랄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덩굴 식물이나 개미가 쉽게 타고 오를 수 있게 벽에 거북이 등 무늬를 새겼다. 제방용 블록뿐만 아니라 식생 옹벽, 생태 블록, 잔디 블록 등 10여종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김 사장이 이 회사에 합류한 것은 친오빠인 김달환 회장이 2001년 회사를 설립할 때였다. 성동여자실업고를 졸업한 그는 한국은행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세금 및 재무 관리, 직원 관리, 공공기관에 내야 하는 서류작업 등을 도맡았다. 당시 그는 부사장이었지만 창업 초기기업에서 생기는 잡다한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 했다. 이 회사는 2007년엔 73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만큼 급성장했다.

◆대표이사로 기업회생 주도

회사 규모가 커지자 경영방식을 놓고 갈등이 커졌다. 김 회장은 활성탄, 황토 자전거도로, 4대강 준설토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반면 당시 김 부사장은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빠와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2010년 3월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1년 반도 안 돼 돌아왔다. 회사가 발주처로부터 선급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부도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복귀했다. 김 사장은 “일단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을 접고 무조건 뛰어다녔다”며 “채권단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11월 기업회생절차 인가를 받아냈다. 이후부터는 사업 수주에 적극 나섰다. 국토관리청의 영동~추풍령 1공구 사업, 용인시의 은이소하천과 평촌천 정비공사, 한국수자원공사의 시화MTV 3공구 사업,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청라지구 3공구 식생매트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마산현동 국민임대주택단지 조성공사, 경남개발공사의 국민임대주택단지 공사 등에 참여했다.

◆생산방식 바꿔 매출 늘려

김 사장은 지난해 6월 블록 생산방식을 습식에서 건식으로 바꿨다. “몰드로 찍어낸 뒤 말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습식으로는 300㎏짜리 블록을 하루에 1개밖에 만들지 못한다”며 “대량으로 납품하는 사업을 따내기 위해 하루에 150개를 만들 수 있는 건식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매출은 2012년 11억원에서 지난해 21억원(영업이익 6700만원)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매출 30억원(영업이익 2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5일엔 13억원짜리 계약을 따냈다. 그는 올해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사장은 공부하는 데도 열심이다. 한국은행에 다닐 때 한양대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했고, 우일이알에스 일을 하면서는 한성대 디지털중소기업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회사를 좀 더 키운 뒤 노년에는 실버타운을 만들어 어르신들과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