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전지·디스플레이 기술
'소재 혁신' 없인 주도 힘들어
합병으로 OLED 등 시너지
삼성, 제일모직 지분율 ↑
[ 김현석 기자 ]
‘혁신 DNA(삼성SDI)와 소재 인프라(제일모직)를 합쳐 소재산업을 키우겠다.’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 결정에는 삼성의 소재산업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휴대폰 TV 메모리반도체 등에서 세계 1위에 오른 삼성이지만, 소재 분야에서는 수백년을 이어온 독일 일본 미국 소재 기업들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게다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태양전지, 2차전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기술이 부상하면서 소재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소재 혁신 없이는 이들 제품의 이른 양산, 상용화가 어렵다. 이 때문에 삼성은 차세대 소재에서는 주도권을 내줘선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몇 년 전부터 투자해왔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에서 패션사업을 떼어내 소재회사로 개편하고 11월 삼성전자와 삼성SDI, 제일모직이 함께 투자한 수원 전자소재연구단지를 완공했다. 이어 이번에 제일모직을 삼성SDI와 합친 것이다.
◆소재 혁신, 삼성SDI가 맡는다
삼성SDI는 혁신 DNA를 가진 회사다. 1970년 설립돼 삼성전관이라는 이름으로 브라운관 사업을 하던 이 회사는 브라운관이 사양길에 접어든 2000년대 초 리튬이온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 소니가 최초로 사업화한 뒤 일본 업체가 휩쓸던 이 시장에서 삼성SDI는 역전을 일궈냈다. 삼성전자의 측면 지원도 있었지만, 사업을 시작한 뒤 한 차례의 사고나 리콜이 없을 정도로 품질관리를 한 결과 2010년 소형 2차전지에서 글로벌 시장 1위를 한 것이다. 삼성SDI는 작년에도 시장 점유율 27.8%를 차지해 4년째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반면 제일모직은 2000년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대표적 전자소재인 LCD(액정표시장치) TV용 편광필름 기술 확보를 위해 2007년 코스닥회사 에이스디지텍을 650억원에 인수했지만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SDI에 제일모직을 합병시켜 소재산업을 주도하도록 맡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SDI는 OLED를 개발한 회사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투자해오다 2009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로 분사했다. 이 회사와 삼성전자 LCD사업부가 합쳐진 회사가 삼성디스플레이다. 제일모직은 최근 독일 노바LED를 3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OLED 소재에 과감하게 투자해온 만큼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제일모직의 분리막 제조 기술 등이 삼성SDI 배터리의 경쟁력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사는 합병 발표 뒤 낸 보도자료에서 “전자재료 및 케미컬 등 소재부터 부품까지 사업을 확대해 전자 자동차 등 다양한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재·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증시에서는 양사의 주가가 폭등했다. 삼성SDI는 6.62% 올라 16만1000원, 제일모직은 5.75% 상승해 7만1700원을 기록했다.
◆삼성의 제일모직 지배력 높인다
삼성이 제일모직 지분을 늘려야 할 필요성도 합병 이유로 꼽힌다. 삼성은 지난해 제일모직에서 패션사업을 떼어낸 뒤 첨단 소재회사로 키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다. 삼성의 지분율이 7.15%(삼성카드 등 3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키워봤자 국민연금(11.16%), 한국투자신탁운용(7.25%) 등이 거둘 과실이 삼성보다 더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삼성SDI와 제일모직이 합병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삼성SDI는 삼성전자가 지분 19.68%를 갖고 있어 합병 후 합병한 회사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분율은 13.5%에 달한다. 이는 2대주주인 국민연금의 10.5%를 넘는다.
제일모직은 삼성엔지니어링(13.1%), 삼성석유화학(21.4%)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제일모직에 대한 삼성의 지배력이 약하면 순환출자 고리에 있는 삼성엔지니어링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할 수 있다.
한편 박상진 삼성SDI 사장과 조남성 제일모직 사장은 합병 후에도 각각 기존 사업을 담당하는 각자대표로 동거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