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멍게

입력 2014-03-31 20:32
수정 2014-04-01 04:42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멍게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옷핀(안전핀)이다. 1회용 포크나 이쑤시개 등이 별로 없던 시절, 한쪽을 쭉 편 핀으로 학교 앞 좌판에서 멍게를 찍어 먹던 생각이 난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유난히 많던 친구들의 단골 별명도 멍게였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멍게는 이처럼 뭔가 서민적이고 투박한 그런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지용 시인은 ‘부산2’라는 산문에서 멍게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생선 파는 장수가 이름도 모르고 파는 생선이 있다. 멍기라는 것이 있다. 우멍거지라고도 하고 우름송이라고도 한다.” 생선장수조차 이름을 모를 정도로 하찮은 해산물이었던 모양이다. 정 시인의 글에는 멍게의 어원에 대한 단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을 지낸 이두석 씨에 의하면 우멍거지란 남성의 생식기를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었다고 한다. 멍게가 물을 뿜어대는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좀 민망했던지 두 글자로 줄여 멍거로 불렀고 이것이 나중에 멍게가 됐다는 것이다. 우렁쉥이가 원래 표준어지만 경상도 사투리인 멍게라는 말이 워낙 널리 쓰이면서 지금은 둘다 표준어가 됐다.

멍게는 척삭동물이다. 어릴 때는 올챙이처럼 헤엄쳐 다니다 바위 등에 고정하면서 특유의 모양으로 자란다. “멍게가 고착생활을 하면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려 동물에서 식물로 바뀐다”는 속설이 있다. 한 영화 대사로 나와 널리 퍼진 얘기지만 사실이 아니다. 멍게는 해삼 해파리와 함께 3대 저칼로리 수산물로 꼽힌다. 근육 생성에 도움이 되는 다량의 글리코겐을 함유하고 있는 데다 타우린 프롤린 글루탐산 글리신 등이 특유의 맛을 내고 성인병 예방 효과도 있다. 상큼하고 향긋한 데다 쌉쌀한 맛이 일품이다.

2011년 천안함 폭침 때는 잠시 전 국민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천안함 어뢰추진체에 붙어있던 멍게가 동해안에만 서식하는 붉은 멍게라며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황당한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던 것. 전문가가 동원돼 DNA까지 공개된 끝에 결국 해프닝인 것으로 드러났다.

제철을 맞은 멍게 가격이 작년보다 30%가량 싸지면서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마트의 3월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무려 20배 이상 늘 정도다. 주산지인 경남 통영 양식장의 작황이 좋은 데다 올해는 노로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도 없어서라고 한다. 초고추장에 버무린 멍게비빔밥 생각에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