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LG, 신세계 등 국내 주요 그룹사들이 31일 오후 등기임원의 보수를 일제히 공개할 예정이어서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 기업 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연봉 5억 원 이상 상장사 등기임원의 경우 연봉을 모두 사업 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삼성, 현대차, SK 등 주요 기업들은 12월 결산법인 기준으로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마지막 날인 이날 오후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등기임원의 경우 평균 연봉이 84억 원인 것으로 공시된 바 있지만, 개인별 연봉은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이 단 한번도 없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일부 기업 오너들은 앞당겨 지난해 연봉을 공개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지난해 연봉 42억4100만원( 급여 24억1900만원, 상여금 18억2200만원)을 받았다고 지난 28일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조카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계열사 만도 에서 지난해 23억880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고 밝혔다.
또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등기이사로 있는 GS건설에서 지난해 17억2700만원(상여금 포함)을 보수로 받았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등기임원인 현대차그룹도 오후 늦게 사업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최근 현대제철 등기임원에서 물러났지만 지난해 연봉은 공개 대상이다.
최태원 SK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등도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지난해까지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려 이번 사업보고서에서 모두 보수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마지막날 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것을 두고 지나치게 높은 연봉으로 반기업 정서가 커질 우려 때문에 눈치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번 연봉 공개의 이목이 쏠린 곳은 단연 삼성그룹이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날 오후 4시쯤 발표할 예정이다. 등기임원 4명 중 이른바 '연봉 킹'의 주인공도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주주총회에서 권오현 부회장 및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신종균 정보기술(IT)·모바일(IM)부문 사장, 이상훈 경영지원실 사장 등 등기임원 4명에게 지난해 336억 원 가량을 지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1인당 약 83억 7000만원. 지난해 삼성전자 사내 등기이사를 지냈다면 연봉이 83억 원을 웃돌았다는 얘기다.
'연봉 킹'은 신 사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스마트폰 사업으로 지난해 삼성전자에 사상 최대 실적을 안긴 인물이기 때문. 일각에선 100억 원대를 넘길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삼성 오너 일가 중 연봉 공개 대상은 이건희 회장 장녀인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뿐이다. 이 회장 및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부문 사장(경영기획실)은 모두 비등기 임원이다.
LG전자는 증시 마감 시점인 오후 3시 이후 등기임원의 연봉이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 3년간 사내이사로 재임한 구본준 부회장과 정도현 최고재무책임자(CFO) 내역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성과급 중심 연봉 체계인 반면 LG는 급여 위주다. 일례로 삼성그룹 중 가장 먼저 등기임원 보수를 공개한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지난해 연봉 18억 6700만원을 신고했다.
이 중 11억 9500만원은 성과급, 급여는 6억 7200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는 지난해 연봉 11억 5200만원 중 급여가 9억 4500만원에 달했다. 성과급 형식의 상여금은 급여의 20%에 불과했다.
유통업계의 경우 등기임원 보수공개에 대해 상대적으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지난해 '갑을(甲乙) 논란' 등 경제민주화 문제가 확산되면서 '반(反)기업 정서'가 이미 팽배해서다.
'유통 공룡' 신세계와 롯데그룹을 비롯한 CJ그룹 등 대부분 유통 대기업은 이날 오후 잇단 계열사 사업보고서를 통해 5억 원 이상 등기임원 보수 공개에 나설 예정이다.
롯데쇼핑은 지난 22일 신동빈 회장과 이인원 부회장, 신헌 사장 등 임기가 만료된 등기임원을 모두 재선임, 연봉이 5억 원 이상일 경우 실제 보수가 공개될 전망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 11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등기임원은 그대로 유지했다.
반면 CJ그룹과 오리온 등 일부 주요 유통그룹의 오너들은 지난 해부터 줄줄이 등기임원 자리에서 이탈, 보수 공개 이전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 중인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은 지난 21일 그룹 계열사 정기주주총회에서 CJ E&M, CJ CGV, CJ오쇼핑 등 일부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등기이사 보수 공개 조치를 염두에 둔 결정으로 업계는 판단했다. 따라서 이날 이 회장의 보수 공개 대상 계열사는 CJ㈜,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GLS(통합), CJ시스템즈 등으로 알려져 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 역시 지난해 11월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고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경우다. 오리온은 담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으로 인해 4개월 전부터 각자 대표에서 단독 대표체제로 변경됐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3년 전인 2011년 신세계그룹이 신세계와 이마트로 분리될 당시부터 등기임원 사퇴를 논의, 지난해 2월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오너들의 과도한 고액 연봉이 공개됐을 경우 국 민들의 반감 등 사회적 여론이 좋을 순 없다"면서 "가급적 늦게 발표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기업들이 보수공개를 꺼리고 이슈화 되는 것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김정훈 / 정현영 / 김민성 기자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