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빈곤은 내 탓이라는 국민과 남 탓이라는 정치

입력 2014-03-27 20:31
수정 2014-03-28 05:20
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사회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이해’ 조사결과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빈곤을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탓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개인의 책임감, 동기, 노력, 절약 부족 등 본인에게 원인이 있다는 응답률이 충분한 교육기회 부족,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차별 등 사회적 요인을 꼽은 응답률보다 높았다. 삶에 대한 지극히 건강하고 숭고한 태도다.

‘복지는 빈곤층에만 제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도 많았다. ‘사회복지를 늘리면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는 데 대해 ‘그렇다’는 응답률이 43.9%로, ‘그렇지 않다’(39.5%)보다 높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별적 복지, 일하는 복지여야 한다는 국민의 높은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가 성숙해진 시민의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결과다.

사실 국가는 소수의 빈민을 도울 수는 있지만 가난을 해결해줄 수 없다. 부단히 노력하고 땀흘려 일해 소득을 올리고 아껴 쓰는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은 지속될 수도 없다. 연 4%대의 저금리로 창업자금 등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대출해주는 미소금융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 그대로다. 전체 연체율이 2010년 1.6%에서 2013년 8.6%로 치솟았고, 28개 지역지점의 연체율은 13.1%나 된다고 한다. 기금은 곧 고갈될 것이다.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안 갚아도 그만이라는 모럴 해저드가 팽배한 탓이다.

가난을 자신이 아니라 국가 탓,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본인의 책무를 정부에 떠맡기는 것은 가능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정부가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요 논리적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보사연 조사결과에서 한 가지 우려스런 것은 문항 자체에 숨어 있는 오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감세와 복지를 위한 증세는 결코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지만 마치 상충하는 것처럼 대립 문항으로 주어졌다. 세금을 올리지 않는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든 시민정신이 깨어 있음을 확인케 해주는 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