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 기자 레알겜톡] 후회없는 오타쿠는 행복하다

입력 2014-03-26 06:14
수정 2014-03-26 06:44
<p>2012년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Q'의 제작사에서는 황당한 이벤트 공지를 띄운다. 파리, 샌프란시스코, 베이징, 도쿄를 돌며 도장을 받는 사람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는 것. 한국의 두 오타쿠는 고민 끝에 일주를 떠나기로 한다.</p> <p>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끼던 노트북과 귀중품을 팔았다. 그들의 여정은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와 중일 외교문제까지 겹쳐 결코 순탄치 않았다. 누적되는 피로와 함께 '겨우 도장이 뭐라고'는 회의감과 싸우며 어렵게 마지막 도장까지 찍었다. 그런데 4개국을 완주한 사람은 전세계에서 이 두 명뿐이었다.</p> <p>특별한 선물으로 항공권과 숙박권의 비용 혹은 원작자가 그린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 두 사람은 한순간 고민 없이 원작자의 캐릭터를 골랐다. 둘은 '정말 재밌어'라며 자신들의 여정을 다큐멘터리 영화 '에바로드'로 제작해 상영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이런 유의 이들을 흔히 '오타쿠'(혹은 한국말로 오덕, 혹은 과장해서 십덕)라 부른다.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초기에는 '안여돼'(안경-여드름-돼지(뚱보))와 함께 묶여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특성 취미나 사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없는 인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점차 의미가 확대되며 특정 분야의 전문가,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이란 긍정적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다.</p> <p>게임 행사를 취재를 하다보면 쉽게 '오타쿠'족 혹은 열혈 게이머를 만난다. 특히 일반적인 게임 행사가 아닌, 무언가를 손에 얻기 위한 행사에서 '물 만난 고기'격으로 자주 눈에 띈다. 일반 게임 행사가 아메리카노라면, 구매를 위한 게임 행사는 진한 에스프레소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축제가 아니라, 싸워서(?) 쟁취하기 위한 전쟁이다.</p> <p>한국 열혈 게이머에게 가장 유명한 행사는 2012년 5월 15일 '왕십리 대첩'이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디아블로3'의 공식 발매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밤새 '디아블로'의 강림을 애타게 기다렸다. 하필 '왕십리 대첩'이라는 닉네임이 붙었을까. 현장에 있던 게이머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소장판을 손에 얻기 위해 줄을 서있는 그들에게서는 마치 전쟁에 나가는 군인처럼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졌다.</p> <p> 꼬박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러 2014년 3월 24일. '디아블로3'의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가 발매 행사장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날 새벽 3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 1호 구매자 이주호씨는 '겨울에 보드를 타다가 팔이 부러져서 휴가 중이다. 덕분에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서서 가장 먼저 소장판을 손에 넣을 수 있어 기쁘다'며 소감을 전했다.</p> <p>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보자. 2013년 12월 17일, 추운 날씨에도 플레이스테이션4를 구매하기 위해 용산을 찾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콘솔은 한물 갔나'라고 묻고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첫 구매자 홍성민(33세)씨는 6박 7일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열정을 과시했다.</p> <p> 그는 '첫 구매자가 되어 영광이고 기분이 좋다. 처음에 시작할 때, 와이프가 반대를 많이 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평범하게 살래. 한번쯤은 삐딱해도 되지 않느냐.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도박을 한 것도 아니고 술도 안마셨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들어오는 삶이었다. 이렇게만 살고 싶지 않다. 한번 해보고 끝내면, 앞으로 평범하게 살아도 후회할 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설득했다'고 소감과 함께 6박 7일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p> <p>안도현의 시 '연탄재' 중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구절이 있다. 다큐영화 '에바 로드' 속 두 명의 세계일주 오타쿠와, '디아블로3' 확장팩을 얻기 위해 부러진 팔을 불사하고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 게임기를 사기 위해 6박 7일 밤을 샌 평범(?)한 한 가장을 보며 스스로 무엇인가에 연탄재만큼 뜨거웠던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p> <p>어떤 이들은 '고작 게임 하나, 혹은 게임기 하나를 사기 위해 며칠 동안 밤을 새고 기다리다니 이해할 수 없다', '저런 게 오타쿠다'라며 비웃음과 조롱을 보낸다. 하지만 무언가에 푹 빠질 수 있는 오타쿠의 열정이, 혹은 게임에 대한 사랑으로 밤샘을 불사하는 열혈 유저의 모습이 왠지 부럽다.</p> <p>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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