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스토리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하이에크를 비롯한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이 대공황을 심화시키는 해악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하이에크도 프리드먼과 자신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의견을 같이하지만 통화정책만은 예외라고 밝힌 바 있다. 프리드먼 비판의 핵심은 런던정경대학에 있던 하이에크와 로빈스가 불황을 감수해야 한다는 무개입 정책을 영국과 미국에서 조장함으로써 대공황의 심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과 후학들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1929~1933년의 기간에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한 이유를 ‘청산주의’ 영향으로 본다. 당시 미국의 재무부 장관 앤드루 멜론의 ‘허약한 은행을 솎아내는 것이 혹독하지만 은행시스템을 회복시키는 전제조건’이라는 청산주의 논제에 Fed가 가담해 은행위기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통화완화정책의 필요성을 말하던 뉴욕 연방은행 총재인 스트롱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위기에 대한 Fed의 무대응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스트롱의 죽음과 함께 멜론의 청산주의가 Fed의 정책 기반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 경제사학자는 청산주의에 따른 Fed의 무대응을 하이에크와 로빈스 이론의 영향으로 간주한다.
이런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하이에크의 이론에 따른 통화정책의 기준은 명목소득의 안정이지 디플레이션에 대한 무대응이 아니다. 또한 당시 멜론이나 Fed의 청산주의자들이 하이에크나 로빈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이에크 이론이 영어권 경제학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1년 이후이고 로빈스의 대공황에 대한 저작이 발표된 것은 그것보다 더 늦다. 이론적으로나 시기적으로도 영향을 줄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학파에 대공황 심화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