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끝장토론] 朴 대통령 "잠깐만요" '송곳질문'에 장관들 진땀

입력 2014-03-20 21:40
수정 2014-03-21 04:02
현장 스케치


[ 도병욱 기자 ]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손톱 밑 가시 제거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면 문제입니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 팀장님이 답변해보세요.”(박근혜 대통령)

“전혀 준비를 못했는데, 질문을 하셔서 상당히 많이 당황했습니다.”(최우혁 민관합동규제개선단 전략팀장)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장관뿐만 아니라 실무진에도 여러 차례 날카로운 지적과 질문을 했다. 박 대통령이 강도 높은 주문을 쏟아내 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이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국민 모르면 애쓴 공 없다”

박 대통령이 모두발언 이후 처음 마이크를 잡은 것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인증제도 개선 방안을 설명할 때였다. 박 대통령은 “잠깐만요”라며 윤 장관의 설명을 끊은 뒤 “이런 것이 실시간으로 어떻게 고쳐지는지 기업하는 분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 장관이 “인증 관련 콜센터 ‘1381’을 개통했다”고 답변하자 박 대통령은 “그런데 1381을 많이들 아시나, 국민이 모르면 애쓴 공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또 민관합동규제개선단 공동단장인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에게 “손톱 밑 가시 규제 중 아직 90개가 해결을 못 보고 있는데 이른 시일에 완료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관계부처도 책임을 같이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타성 발언을 했다.

문체부·여가부장관 의견 충돌

장관들끼리 의견을 달리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강신철 네오플 대표가 셧다운제(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 접속 이용을 제한하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계기가 됐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목적(청소년 게임중독 예방)이 숭고하기 때문에 규제(셧다운제)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청소년 게임 시간대가 저녁으로 당겨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셧다운제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목적이 숭고하더라도 폐지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알아도 되느냐”고 물었고, 조 장관은 웃으면서 답변을 피했다.

“액티브X, 액티브하게 엑스해 달라”

격론만 오간 것은 아니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액티브X(Active X) 폐지와 관련, “액티브X, 액티브하게(적극적으로) 엑스해 달라(없애달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배영기 두리원FnF 사장이 푸드트럭과 관련, 규제 해결을 호소하면서 반복적으로 “대통령님”이라고 외치자, 박 대통령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또 8년 만에 지방자치단체 규제를 해결한 이정훈 서울반도체 대표가 자신의 경험담을 전하자 박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박수를 쳤다.

갈비집 사장 등 소상공인 대거 참석

참석자들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이날 회의는 당초 오후 6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는 오후 9시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저녁 약속이 있던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는 양해를 구한 뒤 발언순서를 당겼다. 또 오후 7시30분께 사회자인 김종석 홍익대 교수가 “한 시간 정도 더 진행돼야 할 텐데, 잠깐 쉬었다가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정홍원 국무총리는 “계속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답했고, 김 교수는 “배가 고파도 한 시간만 참자. 끝장토론이 무섭다”며 진행을 이어갔다.

한편 이날 참석자는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을 비롯한 각종 단체의 추천으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규제개선추진단 관계자는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가운데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과 규제 개선의 효과를 경험한 이들을 중심으로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김미정 사장은 최근 규제개선추진단이 연 간담회에서 규제로 인한 피해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을 계기로 참석자 명단에 포함됐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