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女成(여성 성공)시대
남편은 재무, 아내는 영업
밖에선 영업 뛰는 여장부
회사선 간식 챙기는 엄마
하나하나 직접 제품 검수
[ 민지혜 기자 ]
“밸브 부속품은 만들 때 열 온도가 조금만 다르거나 크기가 1㎜만 차이가 있어도 불량 판정이 납니다. 제가 일일이 품질을 검사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강문정 세경프론텍 사장(56)은 굳은살이 여러겹 박여 반창고를 붙인 오른손 엄지를 부끄러운 듯 감췄다. 표정은 누구보다 온화한 어머니 같았지만 강 사장의 손은 남자라고 해도 믿길 만큼 거칠었다. 지난 10년 동안 ‘테프론’이라는 밸브 부속품을 일일이 손으로 검수하며 불량 여부를 체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장부라고 불러요”
세경프론텍은 자동차나 선박, 보일러 등의 엔진에 들어가는 밸브 부속품인 테프론을 만드는 회사다. 강 사장의 남편이 1992년 설립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재무관리에만 몰두했다. 자연스럽게 회사 일은 강 사장에게 넘어왔다.
2003년부터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강 사장은 공장을 직접 세우기로 결심했다. 월세 등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아 지금 공장이 있는 김포에 땅을 산 뒤 공장을 지었다.
여성 기업인이 테프론 제조업체를 운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 5시면 일어나서 하루 종일 공장에서 직원들과 품질을 체크하고 포장해서 배송하는 일을 했습니다. 자정까지 일하다가 공장 2층 사무실에 올라와 테프론 전문서적을 펴고 한 장이라도 더 보다가 잠들곤 했죠.”
강 사장은 영업 전선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부산 영도에 테프론을 사겠다는 회사가 있다고 해서 기차를 타고 갔다가 곧바로 울산에 다녀오고, 뭐 그런 일정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여자가 사장이라면서 테프론을 들고 와 팔겠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기업도 많았다고 했다. “강문정이라는 사람이 회사 대표가 맞느냐고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로 믿고 의지하는 지인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했느냐며 지금도 저를 여장부라고 부르곤 해요.”
◆“공장 앞마당에 정원 가꾸겠다”
밖에선 누구보다 똑소리 나는 여장부이지만 회사 안에서는 다들 ‘엄마’라고 칭할 정도로 푸근한 사장님이다.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출출해지잖아요. 그래서 오후 3~4시쯤 간식을 만들어주죠. 옥수수나 고구마를 구워주거나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면 외국인 직원들도 참 좋아해요.” 한국말이 서툰 몽골 직원은 지금도 그를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강 사장이 직원들을 알뜰히 살피는 경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부터 키워온 생활력 덕분이다. 대학 졸업 후 충남 보령에 있던 세 남동생을 서울로 데려와 먹이고, 입히고, 초·중·고 교육을 시켰다.
그는 “건축회사 비서 일을 할 때였는데, 아침마다 도시락을 3개 쌌다”며 “동생들을 온전히 잘 교육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세경프론텍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 매출 50억원을 기록했다. 거래처인 경동나비엔이 미국 수출물량을 늘린 영향이다. “처음엔 영업에만 몰두하다가 제품 불량이 생기는 걸 보면서 품질이 최우선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일일이 체크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강 사장의 원래 꿈은 한식당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세심하고 맛깔나게 요리를 해서 지인들에게 대접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달 공장 시설을 늘리면서 앞마당에 정원도 가꿀 예정이다. “언제든 주변 분들이 들러 차도 마시고 꽃구경도 하고 맘 편히 쉬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동네 어르신들 칠순, 팔순 잔치도 공짜로 열어드릴 거예요.”
김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