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비누의 진화

입력 2014-03-14 20:31
수정 2014-03-15 05:58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양초 제조업자 프록터와 비누 제조업자 갬블은 동서 간이었다. 둘은 ‘원료가 비슷하니 동업해보라’는 장인의 권유로 프록터앤드갬블(P&G)을 차렸다. 우연히 열을 조절하는 것을 잊고 과열시키다 물에 뜨는 비누를 발명한 덕분에 이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연매출 100조원의 세계 1위 생활용품 기업 P&G의 효자상품이 우윳빛 ‘아이보리 비누’였던 것이다.

비누가 대중화된 것은 19세기 들어서였다. 비누제조에 필요한 알칼리 생산 공정이 그 무렵에야 발견됐다. 알칼리(alkali)라는 명칭은 재(kali)에서 유래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비누가 잿물이었으니 그럴듯하다. 구약성서에도 잿물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비누 제조법과 관련해서는 기원전 2800년 무렵의 바빌로니아 유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비누 성분을 담은 진흙그릇 측면에 동물 기름과 재를 끓이는 법이 새겨져 있다. 1세기의 플리니우스 ‘박물지(博物誌)’에도 사포(sapo)라고 불리는 비누를 짐승의 굳기름과 재로 만든다고 기록돼 있다.

유럽에서 사용한 비누는 8세기께 이탈리아 사보나 지방에서 많이 만들었는데 사보나가 비누의 라틴계 호칭(soap)의 어원이 됐다는 설도 있다. 18세기에 목욕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루소가 비누 사용까지 권하지는 않았던 걸 보면 오랫동안 비누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하멜에 의해 전해졌다. 제대로 된 비누는 1882년 청나라와의 무역협정 조인 이후 들어왔다. 여담이지만 경상도 지방에서 비누를 ‘사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봉(savon)이라는 프랑스어가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청일전쟁 직후 하루 품삯이 80전이었을 때 비누 한 개 값이 그보다 비싼 1원이었다.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각종 합성세제가 등장하면서 비누 사용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요즘은 세수할 때 세안제, 손 씻을 때 손 세정제, 샤워할 땐 보디클렌저를 쓰고 머리 감을 때도 샴푸를 사용한다. 대형마트의 매출만 봐도 비누는 2004년 전체 세제의 40%에서 지난해 25%로 줄었고 보디클렌저와 세안제는 크게 늘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 이후에는 비누의 몰락이라 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기원전의 잿물부터 기름비누, 고형비누, 가루비누 등 모양은 바뀌었어도 그 역할은 줄지 않았다. 파생상품이 더 생겨났다. 그러니 비누의 발전이요 진화다. 제 몸을 태워 빛을 밝히는 양초처럼, 제 몸을 바쳐 세상을 씻기는 비누의 사명은 여전히 거룩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