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끝 저리 상품에 방치된 퇴직연금
은행 DB형·손보사 DC형…수익률 상대적으로 낮아
원리금보장형 95% '몰빵'…美·유럽선 실적배당형 대세
"위험자산도 장기 투자땐 안정적 수익 낼 수 있어"
[ 조재길 기자 ]
광고업체인 A사는 지난달 직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퇴직연금을 어떤 식으로 굴릴 것이냐를 놓고서였다. 가입 당시부터 정해진 금액을 받는 확정급여(DB)형과, 가입자가 직접 자금을 운용토록 하는 확정기여(DC)형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95명이 DB형을 선택했다. ‘DB형이 안정적’이란 인식 때문이었다.
◆증권사 퇴직연금 수익률 최고
저금리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데도 84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대부분이 이처럼 ‘안정’이란 틀 속에 갇혀 있다. 연리 3% 안팎의 저리 상품에 방치돼 있는 것. 따라서 퇴직연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장기 적립해 노후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2006년 퇴직연금 제도 도입 후 자금을 운용하는 주체 중 증권사 수익률이 가장 높은 데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매년 각 사업자가 발표한 공시 수익률을 합산한 결과 증권사 DC형은 수익률이 45.9%로 최고였다. 증권사 DB형(40.7%), 생명보험사 DC형(38.2%), 은행 DC형(38.2%), 손해보험사 DB형(36.6%) 등이 뒤를 이었다. 은행 DB형(35.2%)과 손보사 DC형(34.8%)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증권사 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을 많이 편입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최형준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운영부장은 “증권사 고객의 경우 퇴직연금을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하는 비중이 좀 더 높다”며 “매년 일정액을 꾸준히 적립하는 방식이다 보니 시중금리보다 장기 수익률을 높게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에서 퇴직연금을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하는 비중은 2007년 16.6%에서 작년 말 5.5%로 낮아졌다. 반면 미국 호주 유럽 등에선 실적배당형 비중이 50~60%에 달한다.
◆전문가 “주식펀드 비중 높일 때”
은행 보험사 등에서 올해 갱신하는 퇴직연금(원리금보장형)의 1년 수익률은 연 3% 선에 머물고 있다. 금리를 조금 더 높여줬다가는 역마진이 불가피해진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실적배당형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은 “퇴직연금 제도를 시행한 직후 은행 보험사 등이 예금 금리를 경쟁적으로 높여주면서 원리금보장형 상품 가입을 유도했다”며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한 번 정해진 계약을 바꾸는 게 복잡해 전환율이 낮다”고 말했다.
요즘과 같은 저금리 시대엔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주식이나 주식형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미국에선 2000년대 들어 금리가 크게 떨어진 뒤 퇴직연금 펀드 유입액이 늘어나는 동시에 공격적 성향을 가진 DC형으로의 전환이 급증했다”며 “위험자산을 일정 부분 편입해도 장기간 투자할 땐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준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연금제도센터장은 “퇴직연금 가입자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호하고 있어서 문제”라며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인들이 퇴직연금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성일 KG제로인 퇴직연금연구소장은 “퇴직연금 가입자를 대상으로 장기 분산투자의 중요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 DB형·DC형·IRP형
퇴직연금은 계약 내용에 따라 확정급여(DB)형, 확정기여(DC)형, 개인퇴직계좌(IRP)형으로 나뉜다. DB형은 퇴직 후 받을 급여액이 미리 확정되는 방식이다. 퇴직 땐 평균 임금에 근속 연수를 곱해 지급액을 책정한다. 따라서 근로자에겐 운용수익보다 임금상승률이 중요하다. DC형은 외부 금융사의 운용수익에 따라 퇴직금이 달라지는 제도다. IRP형은 근로자가 중도에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는 퇴직금을 적립하고 나중에 연금으로 수령하는 형태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