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CEO' 24시 - 대외발언 삼가고…조용한 현장 행보
지금은 전략적 靜中動
경제민주화법 이행 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말 아껴
[ 김주완 / 주용석 기자 ]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사진)의 말수가 요즘 눈에 띄게 줄었다. 올 들어 단 한 번도 외부강연에 나서지 않았을 정도다. 지난해 각종 경제단체를 돌며 ‘경제민주화’를 외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위원장이 안 보인다”거나 “경제민주화 의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업계 하소연 직접 듣고 있다
이에 대해 노 위원장은 “작년과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작년에는 경제민주화 입법이 공정위의 최대 과제였지만 올해는 입법 과제가 어느 정도 완료된 만큼 이를 집행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노 위원장은 이와 관련, “작년까지는 제도 개선에 인력을 집중투입했는데 올해는 그런 인력들이 사건 조사와 현장 실태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현장 중심으로 갈 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위원장이 떠들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제 입엔 재갈이 물려 있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전략적 정중동(靜中動) 모드”라고 표현했다. 정중동 모드의 핵심은 ‘현장’이다.
실제 노 위원장은 최근 잇따라 현장 간담회를 잡고 있다. 지난달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기업 협력업체 대표 15명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1주일도 안돼 지난달 13일 경기 성남의 한 벤처기업에서 중소·중견 벤처기업 대표 12명을 만났다. 오는 13일에는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유통분야 납품업체 임직원 20여명의 고충을 들을 예정이다.
이렇게 파악한 각종 첩보와 애로사항은 향후 공정위의 기획조사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온 얘기를 밖으로 꺼내는 일은 드물다. 노 위원장은 “공정거래 사건은 외부에 알려지면 (신고 업체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철저히 비공개에 부친다”고 했다. 그래서 노 위원장은 공정위 직원들에게도 간담회 참석자들이 할 얘기를 사전에 파악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는 “비공개 간담회를 해보면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의 방향과 핵심이 뭔지 파악할 수 있을 때가 많다”며 “그런 점에서 간담회 참석자들의 입에서 정제되지 않은 ‘육두문자’가 나와야지 미리 통제된 말이 나오면 아무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활성화-민주화 균형 찾겠다
‘경제민주화 의지가 실종됐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남은 입법 과제는 계속 추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일반 지주회사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허용 등 지난해 마무리짓지 못한 경제민주화 입법은 올해도 계속 밀고 나가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노 위원장은 “법만 만들면 뭘 하느냐. 실제 성과가 나와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노 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이 살아남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태로 갈 수 있는데 국내에선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이런 상황을 무시하는 것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간의 균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노 위원장은 이와 함께 올해는 공정위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매주 간부회의 등을 통해 공정위 직원들에게 불공정거래 조사를 더 꼼꼼히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엉성한 조사로 패소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보험사 담합, 철강사 담합 등 과거 공정위가 제소한 사건이 최근 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한 데 따른 조치다. 지난달 대법원은 2010년 9개 소주업체를 대상으로 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 소주업체 손을 들어줬다.
김주완/주용석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