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그들은 어떻게 빠져나갔나

입력 2014-03-10 20:40
수정 2014-03-11 03:49
국제IB 한국서 징계받은 적 없어
한국 온 거물들 민원도 들고온다
골드만삭스 둘러싼 논란도 주목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김 차관만한 애국자도 없지요”라고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입을 뗀다. “다부지고 치밀해서 어떤 외교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칭찬이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자리를 일어서던 대사는 “김 차관은 다 좋은데 영어가 조금 부족해서…”라고 슬쩍 눙을 친다. 그게 전부였다. 대통령은 귀가 얇았다. 김 차관은 결국 잘리고 말았다. “외교관이 말이야…”라며 대통령은 짜증을 냈다. 그러나 이게 대한민국 외교부에 친미파만 득실대는 이유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긴장하지 마시라. 옛날 이야기다.

지난주에도 미국 정계와 금융계 거물들이 대거 한국을 다녀갔다. 부시도 다녀갔다. 그 전주에는 폴 볼커 전 Fed 의장이, 또 몇 주 전에는 서머스 전 재무장관도 다녀갔다. 세계 금융위기를 주물렀던 루빈도 클린턴도 한국을 다녀간다. 그들은 자주 한국언론의 초청을 받는다. 물론 거액의 댓가를 받는다. 특급이라면 10만달러 이상도 받는다. 노벨상급은 무명이라도 5만달러를 웃돈다. 웃기는 경쟁이 만들어낸 비정상적 몸값이다.

한국이 봉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국에 오면서 민원도 들고 온다. 거액의 거마비를 받으면서 민원까지 해결하는 꿩 먹고 알 먹기다. 그들은 월가의 고문이요 자문역이며 명예회장들이시다. 한국의 어떤 전직은 그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더럭 겁부터 났다고 회고한다. 이번엔 무슨 민원인가? 다른 전직의 증언에 따르면 볼커 전 의장 정도만 민원을 들고 오지 않았다. 과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볼커는 미국서도 존경받는다. 홀로코스트 재단 고문의 위엄이 느껴진다. 볼커 룰을 제안한 장본인이어서 민원을 들고 다닐 입장도 아니다.

초대자가 있고 연락통이 있고 고급 로비의 고리가 형성된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골드만삭스의 부당 채권판매에 대한 징계를 또 다음달로 연기한 일이 떠오른다. 징계는 벌써 세 번이나 “보류!”다. 금감원은 내달 초 같은 제재안을 또 상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되면 내분이요 갈등이다. 부당판매냐 불량채권이냐는 것도 논란이다. 거대 로펌의 이름이 또 등장하는 것도 심상치 않다. 문득 미국 금융기관을 제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다. 누군가 다녀가고 나면 또 허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미국 금융기관은 제재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론스타만 해도 그렇게도 긴 시간과 사회적 갈등이 필요했다. 펀드가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법을 바꾸어준 간단한 일이었다. 반대편에 섰다가 기어이 옷을 벗은 사람도 있다. 시세조작을 눈감아주고, 고배당 따위는 문제 삼지도 않았다. 론스타는 지금도 미스터리 사건이다. 권력 차원의 거악이었다는 일방적 주장도 있다. 침묵은 금이라는 상황이다. 씨티은행은 오랫동안 면책이었다는 말도 있다. 웬만한 비행은 눈감아 준다. 73년 오일쇼크 당시 사심 없이 한국 정부를 디폴트 위기에서 구해낸 공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정설이다. 그럴싸한 앞뒤다. 그러나 시한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외국 금융사 중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곳은 긴 세월 동안 유럽계 도이치증권이 유일했다. 수조원대 손실을 기록한 키코 부당판매 사건에서도 미국 금융사들은 면책이었다. 금융위기 진원지였던 CDS 판매건으로 온 미국이 뒤집혔다. 그러나 동일한 투자건에 대해 한국서는 유사한 제재가 이뤄진 적이 없다. 피해 금융회사들조차 쉬쉬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JP모간이 현지 고위인사 자제들을 대거 취업시켜 로비에 활용한다는 국제적 고발이 있었지만 한국서는 조용하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모모하는 미국회사 한국법인에 장차관 자녀들이 대거 취업하고 있었던 일이 드러났지만 역시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국제 거물들과 뒷배가 맞아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꽤 세련된 처세술이다. 그들은 소위 국제금융통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좋다! 그런 기능도 인물도 필요하다. 그러나 최소한은 지켜 주시기를 ….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