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초저가·빠른 회전·깔끔한 디자인…SPA의 역습

입력 2014-03-07 17:18
의류시장 판도 뒤흔든 SPA


[ 임현우 기자 ]
SPA(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는 흔히 ‘패스트 패션’으로 불린다. SPA는 미국 의류 브랜드 ‘갭’이 1986년 선보인 사업모델로 의류기획·디자인·생산·제조·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제조회사가 맡는 의류 전문점을 말한다. 백화점 등의 고비용 유통을 피해 대형 직영매장을 운영,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한다.

또한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해 상품에 반영시키는 새로운 유통업체이다. 고객 수요와 시장 상황에 따라 1~2주 만에 ‘다품종 대량 공급’도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SPA를 ‘패스트 패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질주하는 해외 SPA

제조직매형 의류(SPA) 업체인 일본 유니클로는 지난해 한국에서 69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37% 증가한 액수다. 유니클로와 함께 3대 SPA로 꼽히는 스페인 자라는 전년보다 22% 늘어난 2038억원어치를 팔았다. 스웨덴 H&M은 한국 진출 3년 만인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3대 SPA의 국내 매출 총액이 2010년 3441억원에서 3년 만에 1조원대로 급증한 것이다. 유니클로 등의 인기는 옷값이 싸면서 품질은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깔끔한 매장에서 순면 티셔츠를 단돈 몇 천원에 팔고, 유행에 따라 다양한 의류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디자인부터 판매까지 일괄 처리하면서 원가를 낮추고 빠르게 제품을 교체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정미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상무는 “의류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해외 SPA로 인해 바뀌었다”며 “국내 업체들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옷값에 거품이 낄 수밖에 없는 백화점과 대리점 중심의 판매에 안주하던 국내 업체에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파죽지세의 해외 SPA와 달리 한국 토종 패션 브랜드는 힘을 못 쓰고 있다.

양극화되는 패션시장
SPA의 한국 상륙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의 의류 구매 패턴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철저히 싼 제품을 사든지, 아니면 아주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구매하든지 둘 중 하나로 양극화되고 있다.

박성경 이래드그룹 부회장은 “요즘 소비자들은 명품으로 포인트를 주고 패션은 SPA를 입는다”고 말했다. SPA와 명품으로 소비자들이 쏠리면서 ‘중간지대’인 중가(中價) 의류시장은 무너지고 있다. 패션 컨설팅업체 MPI가 국내 패션시장의 가격대별 판매 비중을 분석한 결과 중가 상품 비중은 2005년 38%에서 2012년 24%로 급감했다. 대신 고가·중고가 상품은 29%에서 38%로, 저가·중저가 상품은 29%에서 39%로 크게 늘었다. 한마디로 SPA로 소비자는 웃지만 토종 패션업체들은 울상이다. 연간 35조원 규모인 국내 패션시장은 2~3년 전부터 성장률이 연 1~2% 선으로 뚝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니클로, 자라, H&M이 급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SPA와 상품이 겹치는 국내 캐주얼과 여성복은 거의 ‘멘붕’ 상태다.

반격나서는 토종 SPA

해외 SPA에 눌린 국내 SPA도 반격에 나섰다. 토종 SPA 중에서는 이랜드 ‘스파오’, 삼성에버랜드 ‘에잇세컨즈’, 신성통상 ‘탑텐’ 등이 선두 주자로 꼽힌다.

스파오는 지난해 국내 SPA 최초로 순익분기점을 넘기는 등 희망적이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스파오의 모델이자 극복 대상은 유니클로다. 스파오는 유니클로보다 10~20% 싸게 가격을 매기고 보통 2주 정도면 신상품으로 교체한다. 에잇세컨즈도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내년에는 해외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탑텐도 기본적으로는 유니클로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유니클로의 콘셉트는 초저가 전략, 빠른 상품 회전, 깔끔한 디자인이다. SPA와 차별화 전략을 짜는 국내 업체들도 많다. SPA에 없는 것을 만들어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이다. 값비싼 명품이 아니라면 차별화해야 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브랜드 개편에 나서고 있는 곳은 주로 중소업체들이다.

실례로 중소 패션업체인 아비스타는 ‘카이아크만’이라는 브랜드의 야상점퍼로 히트를 쳤다. 정윤석 롯데백화점 선임상품기획자(CMD)는 “중소 업체의 경쟁과 혁신이 치열해진 점은 SPA 열풍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말했다.

SPA 세계 3대 브랜드의 주인은 누구일까

한국은 패스트 패션으로 통하는 SPA의 격전지다. 스페인의 자라(Zara), 스웨덴의 H&M, 일본의 유니클로(Uniqlo)와 한국의 에잇세컨즈(8 Seconds)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은 일본 부자 서열 1위다. 자산 규모로 179억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제쳤다. 그는 유니클로가 소속된 페스트리테일링사의 지분 45.8%를 보유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저개발국 의류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게 특징이다.

▷아만시오 오르테가 자라 회장

자라가 소속된 인디텍스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스페인 최고 갑부로 인디텍스그룹 지분의 59.3%를 소유하고 있다. 재산 규모는 656억달러. 세계 3대 부자다. 자라를 포함해 9개 의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62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매일 직원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옷도 평범하게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넥타이나 양복보다 셔츠에 면바지를 즐긴다.

▷스테판 페르손 H&M 회장

인디텍스그룹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의류업체 H&M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자산은 318억달러. 현금자산만 25억달러(약 2조7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H&M의 지분보유량은 40%. 영국 햄프셔의 링켄홀트 마을을 통째로 구매한 일화로 유명하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임현우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