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정월대보름의 감회

입력 2014-03-05 21:16
수정 2014-03-06 04:42
2월14일을 대보름이라 하는 구세대지만
바쁘게 할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행복

이민재 <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ceo@mson.co.kr >


지난 2월14일, 안중근 의사가 일본으로부터 이토 히로부미 살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날, 나를 아끼는 어느 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나는 당당하게 “오늘요? 오늘 정월 대보름날이죠!”라고 대답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아~그러시죠. 회장님은 역시 구세대이시군요.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에요.”

그렇다. 내가 구세대가 되었구나, 사업을 시작한 지 어언 30년, 그때만 해도 내가 신세대였는데, 그러나 지금의 나는 구세대로 보이고, 생각도 처리 능력도 또 촉감도 신세대하고는 거리가 멀구나 생각하니 ‘살 날이 산 날보다 적구나’라는 생각에 마치 둥근 달이 서산에 걸려있는 모습으로 갑자기 초라함이 엄습했다.

대보름! 갑자기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시골 충남 천안 변두리, 그때만 해도 논과 밭이 있고 집 뒤에 얕은 동산이 있는 마을에서 자랐다. 보름날이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뒷동산에서 남자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했으며 여자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떠오르는 달을 보고 소원을 빌곤 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남자아이들과 함께 조그만 깡통에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서 불을 넣고 힘껏 돌려서 불이 환하게 타면 더 세게 돌리며 웃고 즐기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엄마 아버지한테 계집애가 쥐불놀이한다고 혼나던 시절이었다. 뒷산에 있는 몇 십년 묵은 은행나무에 올라 은행을 따고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자치기를 놀이를 즐겼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휴대폰으로 혼자만의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사는 것 같다.

2013년 1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나의 열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모든 정열을 협회에 쏟고 보니 생각과 모습, 그리고 행동이 역동적인 신세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나는 신세대다. 취임 후 나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겠다고 여성 기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업종마다 지역마다 다들 저마다의 힘든 점을 느끼며 함께 해결하고자 정말 치열하게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아직도 먼 길이 남았지만 지나고 보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그 일을 어찌했나 싶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어떤 이들은 젊은 사람도 힘든데 어떻게 버티는지 젊게 사는 비법이 있느냐고들 묻는다. 하지만 나조차도 내가 이렇게 해낼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답하곤 한다. “일하느라 바빠서 나이들 시간이 없다고.” 바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더 젊게 한다.

이민재 <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ceo@ms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