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분석 - 최태원 회장·재원 부회장 모든 등기이사직 사퇴
대주주 자격만 남아…그룹 구심점 실종
美 태양광사업 철수 등 신사업 벌써 차질
[ 박해영 / 배석준 기자 ] 대법원에서 지난달 27일 실형이 확정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4일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룹 오너 형제가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주주 자격으로만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SK는 최 회장의 형기가 끝나는 2017년 1월까지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된다. 중요한 의사 결정은 계열사 이사회와 수펙스협의회가 내리겠지만 오너의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는 전면 재검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추진해온 태양광 사업을 포기하기로 하는 등 회장 부재에 따른 후폭풍이 적지 않다.
○“회사 위해 백의종군하겠다”
SK는 최 회장이 이달 임기가 끝나는 SK(주)와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SK하이닉스(2015년 만료), SK C&C(2016년 만료) 등 4개 회사의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최 수석부회장도 SK E&S와 SK네트웍스 등기이사직을 내놓는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모든 관계사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회장과 부회장의 등기이사 동반 사임으로 경영공백이 상당히 큰 만큼 전 구성원들이 비상한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최 회장 후임 등기임원 자리를 비워두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SK이노베이션의 이사진은 기존 9명(사외이사 6명)에서 8명으로 줄었다. SK네트웍스는 오는 21일 주총을 열어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는 최 수석부회장과 김준 전무 대신 문종훈 수펙스협의회 통합사무국장과 박성하 SK텔레콤 본부장을 신규임원으로 선임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또 허용석 전 관세청장을 새 감사위원장으로 임명할 계획이다.
최 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SK는 계열사 이사회가 수펙스협의회와 조율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배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동안 SK는 최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지주회사인 SK(주)를 SK C&C를 통해 지배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SK C&C 지분은 최 회장이 38%, 여동생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10.5%씩 갖고 있다.
○미국 태양광사업 전격 철수
최 회장이 1년 넘게 자리를 비우면서 SK의 신사업은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차세대 태양광전지인 CIGS(구리·인듐·갈륨·셀레늄) 박막형 태양전지 사업을 중단하고 철수를 결정했다. 이 회사는 2011년 이후 총 7660만달러(약 813억원)를 투자해 미국의 헬리오볼트사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SK 관계자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점까지 상당한 규모의 추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회장 부재 등으로 신속한 결정이 어려워진 만큼 헬리오볼트(SK보유지분 47.9%)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브라질 원유 광구를 팔고 받은 24억달러(약 2조5680억원)로 신규 자원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 경쟁사들이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에서 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구체적인 투자처 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SK에너지도 연초 호주 석유 유통업체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본입찰을 포기했다.
박해영/배석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