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재 기자 ] # A씨는 속칭 '서류 광탈'을 겪으며 좁아진 취업문을 실감했다. 다양한 스펙을 쌓았어도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B씨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취업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가 가장 힘들다. 자신만 정상적 사회생활에서 탈락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불안해지기도 했다.
20대와 30대의 '강박장애(F42, Obsessive-compulsive disorder)'가 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경쟁에서 뒤쳐질 것 같은 두려움'이 20대와 30대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했다.
강박장애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사고나 나쁜 일이 생길 것을 불안해하는 증상을 보인다. 강박성 사고는 강박행위로 이어진다. 손 씻기나 검토하기, 청소하기 등 특정행동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된다.
20~30대가 주로 겪는 취업 스트레스가 실제 '강박장애'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30 세대가 막연한 불안감을 겪는 현상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 강박장애 환자 4년간 3000명 증가… 2030 비중 확대
지난 2일 건겅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9~2013년) 강박장애 진료 환자 분석 결과 2013년 기준으로 20대가 전체 환자의 24%, 30대가 21.2%를 차지했다.
국내 강박장애 환자의 수가 2009년 약 2만1000명에서 2013년 약 2만4000명으로 4년간 3000여 명(13.1%)증가한 가운데, 연령대 비교에서도 2030 비중이 높았다.
한양대생 김현준 씨(정치외교학과4)는 "이 나이쯤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취업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누구라도 불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원치욱 씨(기계공학부3)는 "실제 불안감도 있지만, 인터넷이 발달해 대중심리로 인한 상승작용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상담센터 찾지 않는 대학생들…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러나 늘어난 강박장애 환자의 숫자에 비해 주요 대학 상담센터들의 강박장애 상담 사례는 극소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취업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나 우울증, 무력감 등을 호소하는 학생들은 있지만 상담센터를 찾기보다는 선배나 학과 교수 등 주변인들과 의논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불안감이나 강박감 등을 심각한 질환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취업만 되면 해결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
서울 소재 4년제대 한 학생은 "실제 고민이 된다면 교수님이나 선배들 같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된다"며 "심리상담센터 상담은 원론적 이야기에 머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전문가 진단은 달라… "강박장애 직접적 원인 아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달랐다. 취업이나 학업 스트레스가 강박장애의 직접적 원인으로 볼 수 없으며, 통계 수치 또한 '주관'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김세주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강박장애 원인을 취업이나 학업 스트레스로 볼 수는 없다"며 "강박장애는 타고난 성향에 기인하는 사례가 많으며 20살 전후로 증상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강박장애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경쟁에서 뒤처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민수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과 교수는 강박장애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때 치료가 필요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가까운 사람과의 상담은 '나도 그랬어' 하는 공감 정도의 수준"이라며 "과거와 달리 사회가 복잡해지며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분명한 처방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박장애 환자 통계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했다. 송우림 가톨릭대 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편의상 처방전을 낼때 질병 코드를 집어넣는데, 정확한 진단이라기보다 처방을 위한 코드인 경우가 많다"며 "이 코드를 기반으로 통계가 나온 것 같은데, 강박장애라기보다는 '범불안장애'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김민재 기자 mjk11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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