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

입력 2014-03-03 07:00
하루키가 위스키의 성지라 부른 아일레이섬

여행과 술 동시에 즐기려면 '글렌리벳 트레일 투어'



스코틀랜드는 골프와 스카치 위스키가 탄생한 지역이다. 골프의 발원지인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클럽을 휘두르는 것이 골퍼들의 꿈이라면, 위스키 애호가들의 행선지는 남쪽부터 북쪽까지 스코틀랜드 전역에 골고루 분포한다. 하일랜드의 스페이사이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싱글몰트 위스키 산지다. 남서쪽 바다의 아일레이 섬과 스카이 섬에서는 독특한 풍미의 위스키들을 생산한다. 길게는 50여년까지 같은 창고 안에 정착한 채 숙성을 거치는 동안 바람과 햇볕, 산과 바다의 흔적이 고스란히 오크통 속의 위스키에 스며든다. 그 풍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맛있고 즐겁다.

싱글몰트 위스키 고향, 스페이 사이드

스페이사이드는 하일랜드 동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곳이 위스키 생산의 중심지가 된 1차적 원인은 스코틀랜드에서 유속이 가장 빠르다는 스페이 강 때문이었다. 청정한 물은 좋은 위스키의 조건이다. 맑은 샘물과 지류, 비옥한 토양, 풍부한 일조량은 탁월한 위스키 증류소들을 탄생시켰다. 19세기의 금주법도 한몫했다. 관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에 밀주업자들이 대거 들어선 것. 맥캘란, 글렌피딕, 글렌리벳 등 싱글몰트 위스키의 문외한들에게도 익숙한 증류소들이 이곳에 자리한다.

스페이 강 본류 유역에서 시작하는 맥캘란의 투어링 프로그램은 지하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과정부터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작기로 유명한 구리 증류기를 살펴보며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투어링의 단계에 따라 구리통을 생산하는 쿠퍼리지 공장을 둘러볼 수도 있다. 증류소 투어가 끝난 후에는 12년과 18년 등 맥캘란을 대표하는 제품들을 비교하며 시음할 수 있다. 맥캘란의 정신적 고향이자 라벨에 그려진 이스터엘키스 하우스 2층에서 위스키와 전통 요리를 맛보는 것도 즐겁다.

스페이사이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증류소 글렌리벳에는 가이드와 함께 글렌 지역과 위스키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무료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스피릿 오브 더 몰트 투어’는 30파운드를 지불해야 하지만, 제값을 톡톡히 한다. 수원지인 조시 우물, 증류소 투어, 글렌리벳의 7가지 맛을 각각 시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물론, 숙성 중인 술통에서 바로 건져 올린 위스키 원액을 맛볼 수도 있다.

여행과 술을 동시에 즐기고 싶다면 ‘글렌리벳 트레일 투어’도 좋은 선택이다. 방문자들은 표지 안내판에 적힌 대로 오래전 위스키 주조가 불법이던 시절 밀주업자들이 술을 유통하던 비밀 통로를 따라 걷는다. 글렌 지역에서 가장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밀주업자들의 피난처였던 지역을 경유하는 코스부터 브랜드의 창시자인 조지 스미스의 생가를 방문하는 코스까지 다채로운 경로가 마련되어 있다.

술잔에 담긴 바다, 아일레이 섬

아일레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의 성지’라 칭했던 곳이다. 인구 3000명에 불과한 작은 섬에 전 세계의 마니아들이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일라 섬을 비롯해 스코틀랜드 남서부의 섬들에서 생산하는 싱글 몰트 위스키에서는 드물게도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독한 훈연향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풍미는 섬의 지형과 관계가 깊다. 술통의 나뭇결이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을 흡수하고 내뱉는 동안, 바닷가의 미묘한 갯내가 원액에도 스며든다. 술의 풍미와 반대로, 아일라 섬은 사실 거센 자극보다 평화와 신비에 더 친밀한 곳이다. 변화무쌍한 구름 아래 섬광들로 가득한 수평선이 펼쳐지고, 목초지 위로 소들이 풀을 뜯는다. 새하얀 증류소 건물들은 이러한 풍경 위에 더욱 매력적인 방점을 찍는다.

아일라 섬에는 총 9개의 싱글몰트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데, 증류소마다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의 상세한 과정과 비용은 웹사이트에 안내되어 있다. 섬의 남동쪽에 늘어선 아드벡과 라프로익, 라가불린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도 가장 강건하고 남성적인 위스키들을 만든다. 기이한 암석들과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 유유하게 움직이는 보트들, 견고한 자세로 도열한 오크통의 풍경은 위스키에 관심이 없는 여행자라도 환호할 만큼 아름답다. 19세기 초반에 나란히 문을 연 세 증류소들의 공통 분모는 크레졸이나 요오드 등 약품 냄새가 연상될 정도로 스모키한 풍미다.

한편 섬의 중심지 보모어 마을에 있는 보모어증류소에서는 비교적 부드러운 풍미의 위스키를 맛볼 수 있으며, ‘아일라 위스키의 대부’라 불리는 짐 맥이완이 지휘하는 브뤽라디증류소에서는 실험과 전통이 조화된 흥미로운 셀렉션들을 만날 수 있다. 브뤽라디증류소 인근의 포트 샬롯 마을은 해산물 레스토랑으로도 유명하다. 파도소리가 귓가에서 음악처럼 맴도는 밤, 해산물 플래터로 유명한 로킨달 호텔의 펍에는 증류소장부터 어부들까지 섬 주민들이 격 없이 어울린다. 싱싱한 굴 위에 독주를 살짝 부어 맛보는 밤은 그 짜릿한 풍미만큼 잊기 힘들 것이다.

하일랜드=정미환 여행작가 clart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