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 1급 첫 '개방형 인사실험' 물거품 위기
기업인 출신 지원자'0'
재산 공개·사생활 검증에 퇴사 후 2년 취업 제한도
'고위공직자 규제' 부담된 듯
[ 김주완 기자 ] 정부가 과감한 규제 개혁을 위해 규제를 받는 기업인에게 규제완화 정책을 맡기려는 인사실험이 수포로 돌아갔다. 정부 전체의 규제 업무를 총괄하는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1급) 자리를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했지만 기업인 출신이 아무도 응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산신고와 퇴직 후 재취업 제한 등 고위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지원자 중 기업인 0명
28일 정부에 따르면 총리실은 최근 공석인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 후보를 3배수로 압축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하지만 최종 후보 3명은 물론 응모자 전체 11명 명단에도 기업인 출신은 없었다. 지난달 정부는 총리실 1급 절반을 이례적으로 물갈이하며 1급 자리 중 하나인 규제조정실장을 처음으로 민간 개방형 공모제로 뽑는다고 발표했다. 당시 총리실은 규제 개혁을 강력하게 이끌 ‘미스터 규제개혁’을 찾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존 공무원 발상의 틀을 벗어나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입장에서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총리실은 이에 따라 출신과 경력에 상관없이 학력 등의 일정 조건만 갖추면 사실상 기업인 출신으로 규제조정실장을 임명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도 “규제조정실장을 개방형으로 전환한 것은 규제 때문에 애로를 겪는 기업의 시각에서 규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전문가를 뽑기 위한 것”이라고 인선 원칙을 밝혔다. 하지만 공개모집 결과 기업인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학계와 민간분야 전문가 4명, 민간경제연구원 2명, 변호사 등 전문직 2명, 현직 관료 1명 등이 전부였다.
○까다로운 조건에 발길 돌려
총리실의 기대와 달리 기업인 출신의 지원이 전무했던 이유는 고위공직자로서 거쳐야 하는 검증 과정과 퇴직 후 취업 제한 규정이 부담을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선 1급 공직자로 임명되려면 업무 능력 검증 이전에 각종 신원조회를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 사생활도 포함돼 있다. 재산 공개를 통해 재산 형성 과정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도 민간기업인 출신에게 큰 부담이다. 퇴직 후 재취업 제한은 현실적인 걱정거리다. 4급 이상 행정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 공무원 시절 업무와 관련된 업종에서 일할 수 없다. 규제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인 만큼 퇴직 후 하게 될 웬만한 민간업무가 모두 이 규정에 저촉될 수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처음 모집 공고를 내고 많은 기업인이 문의를 해왔지만 결국 이 같은 조건들을 알고난 뒤에는 모두 포기했다”고 말했다.
○개혁 동력 상실하나
이번 인사실험 실패로 정부의 규제 개혁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총리실이 유독 규제조정실장을 민간 개방직으로 전환키로 한 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각종 규제 개혁 정책의 성과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현장 중심의 규제를 제거하는 일명 ‘손톱밑 가시’를 꾸준히 발굴해 개선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에 등록된 규제는 전년보다 380건 늘어난 1만5269건으로 처음으로 1만5000건을 넘어섰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는 규제총량제를 도입하는 등 많은 과제를 추진해야 하는데 규제 개혁의 첫 번째 단추인 규제조정실장에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할 것 같아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