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분석
성형광고 금지…대형마트 품목 제한…게임산업 통제…
규제심사 없는 의원입법, 논의 안하고 통과 일쑤
'경제혁신' 발목 잡고 내수 살리기에 찬물
[ 이준혁 / 정태웅 / 유승호 / 임근호 기자 ]
한 달에 서너 번씩 중국을 방문해 의료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성형외과 대표원장은 요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정부에서는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각종 규제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에서 기업체 대표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에서 새로 발의되는 규제 법안들을 파악하기 어려워 정상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지 못하겠다는 불만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동시다발 규제 법안과 포퓰리즘성 여론몰이가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규제입법
우후죽순 쏟아지는 의원 입법이 서비스 산업 발전과 내수소비 진작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발의한 법률안은 부처 간 협의와 입법 예고·규제 심사·법제처 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의원 입법안은 이런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나 피해 등에 대한 논의가 없이 기습적으로 통과되기 일쑤다.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이 지난 21일 발의한 ‘성형광고 전면금지 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형의료 의사들은 이 법안을 ‘뷰티 산업을 사형시키는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광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것을 전제로 광고할 수 있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마케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은 성형 부위별로 연령 기준을 정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했다. 성형 부위 연령 기준을 위반하는 의사에게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의료 업계에서는 성형 기준을 특정 연령에 맞추고 법으로 규제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속내는 ‘업계 길들이기’?
유통시장의 거래 관행을 통째로 뒤집는 규제 법안도 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형마트에 특정품목 판매 제한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대형마트가 이 권고에 따르지 않으면 이행 명령을 받고 과태료까지 내야 한다.
국회를 통과해 오는 9월 시행되는 선행학습금지법(강은희 새누리당 의원, 이상민 민주당 의원 발의)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고입·대입 등 입시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나 출제하면 재정적 불이익을 주도록 했다. 정상적인 사교육 업체들이 급속히 위축되고, 숨어서 선행교육을 하는 ‘지하 사교육’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게임규제 움직임도 변화 없어
게임 산업을 ‘도박’으로 간주한 입법안들은 한국의 게임 산업을 고사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게임 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인터넷 게임 사업자로부터 매출의 1% 이하를 중독치유 부담금으로 징수하도록 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 게임 산업을 술·마약·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국가가 나서 이를 통제하도록 했다.
게임 업체 넥슨 관계자는 “핀란드는 게임 산업을 국가가 육성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치권이 게임을 마약과 같다고 규정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며 “정치권에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고 씁쓸해했다.
이준혁/정태웅/유승호/임근호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