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입학식 한켠엔 아직도…디지털 시대에 밀린 사진사의 애환

입력 2014-02-26 14:52
수정 2014-02-26 20:57
[ 김민재 기자 ] "나이가 있으니까… 입학식, 졸업식 사진 찍어갖곤 생활도 힘들지만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

26일 오전 대학 신입생 입학식이 열린 서울 성동구 한양대 올림픽체육관. 꽃다발과 함께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운데 깊게 패인 주름이 선명한 사진사 임모 씨(83)가 머뭇머뭇 말했다.

어느새 희귀한 풍경이 돼버린 출장 사진사. 입학식 장소 앞에 사진 가판을 벌여놓고 두리번거려도 보지만 정작 그에게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관심하게 지나치거나 임 씨 옆에서 직접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임 씨 같은 출장 사진사들에게는 졸업식과 입학식이 몰려있는 2월 말~3월 초가 그나마 대목이다. 예전처럼 사진사들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맡기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사진관 문을 열어놓고 '개점휴업' 하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라 학교들을 찾아다닌다.

그가 찍는 사진은 사이즈에 따라 2만 원, 3만 원, 5만 원짜리로 나뉜다. 임 씨의 주 수입원은 행사에서 수상하는 학생들을 찍어주는 기념사진이다. 사실 공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풀려야 하루 수입 10만 원선이니 하루종일 기껏 두세 장 찍는 게 전부다.

"출장 사진사 하러 다닌 지 10년쯤 된 것 같다"고 얼버무린 임 씨는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사진 찍을 일이 없어졌다"며 "이젠 사진 찍어서는 생활해 나가기 어렵다"고 한숨 쉬었다.

그래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생계가 걸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고령의 그에겐 막막한 일이다. 임 씨는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옆자리에 가판을 벌인 김길년 씨(71)는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진사 일을 시작했다. 사진 경력만 무려 50여 년이다. 단정하게 다듬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일할 때 은단을 꼭 챙겨먹고 머리를 매만진다고 했다. 잘 나가던 시절의 습관이 아직 남아있는 듯했다.

"명동 '쓰리세븐'이라고, 유명했지. 그 현상소에서 일을 배웠어. 그 시절 기사 생활 할 때는 액자로 나오는 큰 사진만 찍었지."

그는 직접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요즘은 하루 수입 10만 원 올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행사를 쫓아다니며 출장 사진사 노릇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김 씨는 "하루에 한두 손님 잡기도 힘들다"며 "그나마도 다른 사진사들에게 뺏길 때는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장사는 계절장사"라며 "봄이 오면 여의도 벚꽃 구경 온 사람들 즉석사진 찍으러 가야지"라고 털어놓곤 등을 돌려 메아리 없는 호객행위에 나섰다.

한경닷컴 김민재 기자 mjk11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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