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독일에서 숨진 날은 1904년 7월15일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체호프 연구학회는 꼭 7월2일을 기일로 지킨다. 왜 그럴까. 당시 러시아가 옛날 달력인 율리우스력을 썼기 때문이다. 11월에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이 ‘10월 혁명’인 것과 러시아정교회의 성탄절이 1월7일인 것도 이런 연유다.
달력 때문에 생긴 해프닝은 무수히 많다. 로마에서는 기원전 46년이 무려 445일이나 됐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 태양력(1년 365일)과의 오차를 없애기 위해 한꺼번에 90일의 윤일을 넣은 것이다. 그 전까지는 달의 공전주기를 따라 1년을 355일로 삼고 2년마다 윤년(378일)을 뒀다. 이렇게 들쭉날쭉하다 보니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윤년을 제멋대로 정하는 부작용까지 생겼다.
고대 문명에서 달력은 농사와 수리, 과세 등의 기준이 되는 국가표준이었다. 권력자들이 이를 통제하려 한 것은 당연했다. 카이사르는 새로 만든 달력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율리우스력이라 했다. 한 해의 시작을 3월에서 1월로 바꾸고 7월의 명칭도 퀸틸리스에서 율리우스(Julius)로 바꿨다. 이것이 영어 ‘July’(7월)의 기원이다.
뒤이어 권력을 잡은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이름을 8월(August)에 넣었다. 8월의 날짜가 율리우스의 달보다 적다는 이유로 2월에서 하루를 빼 보태기도 했다. 이쯤 되면 권력이 달력에서 나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무튼 이 ‘달력의 권력’은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미세한 편차 때문에 날짜가 맞지 않아 16세기 말에는 약 10일의 오차가 생겼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13세가 만든 게 지금의 그레고리력이다. 교황은 1582년 10월4일 다음날을 10월15일로 조정하고 모든 사람이 같은 날 부활축일을 맞도록 했다. 그리고 4년에 한 번 윤년을 둬 1년이 365.2425일이 되도록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금테두리까지 둘러 멋있게 만든 달력이라도 새해가 되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면 정부 정책도 그에 맞게 바꿔야지 예전에 잘 맞았다고 올해도 쓰겠다면 그건 헛수고라는 얘기다. 이른바 달력론으로 재탕삼탕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맞다. 헌 달력은 무용지물이다.
옛날 부채장수와 달력장수 얘기가 생각난다. 몰래 모아둔 부채로 훗날 어려움에 처한 남편을 도운 부채장수 아내와 몇 년 뒤에 있을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겠다며 그 해의 달력을 부지런히 모아두는 달력장수 아내 말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