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Story - "대통령 곁엔 스토리 있는 인물 앉혀라"
이미지 띄워야 정책도 먹힌다
대통령 옆 관료 대신 민간인…업무보고 때 자리배치도 신경
전문가 없이 '고군분투'
백기승 비서관 팀이 전담…美선 화법·손짓까지 조언
[ 도병욱 기자 ]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환경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 업무보고. 박근혜 대통령 왼쪽에는 한부모가정 여성 가장인 이호연 씨와 강원 홍천군 소매곡리 이장인 지진수 씨가, 오른쪽으로는 정홍원 국무총리와 강송희 청년위 정책참여단원이 자리했다.
이달 초 국토부 등이 만든 초안에는 박 대통령 왼쪽에 현오석 부총리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인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이, 오른쪽에 정 총리와 정연만 환경부 차관이 앉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박 대통령 주변에 젊고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 있어야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해 좌석 배치가 바뀌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주변에 고위 관료만 앉는 것보다 행사의 성격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민간인을 앉히는 것이 눈길을 끄는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24일 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기업청 업무보고에서 나영 청년위 정책참여단원과 이원해 대모엔지니어링 대표, 전하술 우리자연홀딩스 대표 등이 대통령 주변에 앉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기획들은 청와대 PI(Presidential Identity)팀이 주도하고 있다. PI는 대통령 이미지를 관리하고 개선하는 일을 뜻한다. 청와대가 PI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관련 연구를 위한 예산 2억4000만원을 배정하면서부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소고기 파동’으로 곤욕을 치르던 2008년 6월 홍보기획관직을 신설하고, PI 관련 업무를 맡겼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PI팀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을 통해 각종 이슈가 순식간에 퍼지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꾸준하게 대통령 이미지를 관리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홍보수석실 소속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 산하에 PI팀을 두고 있다. 4명의 행정관이 PI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이들의 역할은 자리 배치 외에도 다양하다. 대통령의 동선이나 포토라인을 조정하는 일도 한다. 지난해 청와대 접견실 내 취재 동선이 바뀐 적이 있는데, 박 대통령의 뒷모습이 찍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행사장에 설치되는 대형 현수막 역시 PI팀이 신경쓰는 부분이다. 현수막과 대통령 의상이 같은 색일 경우 어색한 사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PI팀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인력 등이 부족한 상황이다. PI팀 4명 중 3명이 대선 캠프 참모와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제대로 된 PI 전문가가 청와대 내에 없는 실정이다.
PI팀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7일 중앙통합방위회의 준비 과정에서 PI팀과 의전비서관실이 이성한 경찰청장 자리를 놓고 의견 대립을 벌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PI팀에서는 민·관·군·경이 함께 방위를 책임지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경찰청장이 대통령 주변에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의전비서관실은 차관급인 청장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다고 반대했고, 결국 의전비서관실의 주장대로 좌석이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외부에 보이는 모습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도 PI에는 장애요인 중 하나다. 정치권 관계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우 화법과 손동작 등 세세한 부분까지 PI팀에서 컨트롤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이런 부분을 의식적으로 관리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미국처럼 PI를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